[8회]누가 신사임당을 만들었을까?

리채운의 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
[8회]누가 신사임당을 만들었을까?
-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 입력 : 2021. 09.12(일) 21:28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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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CTN] 하늘이 총명함을 주는 것은 귀천(貴賤), 상하(上下), 남북(南北)을 가리지 않으니, 타고난 재능을 확충하여 맹렬하게 정신을 다 하면 9999분(分)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1분의 공부는 이루기가 몹시 어려우니 노력해야 마땅하다.-추사 김정희

□외할아버지가 손녀의 재능을 알아보다.

외할아버지 이사온은 영특한 외손녀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이 아이에게 놀라운 화가로서의 소질까지 있다니! 이사온은 손녀딸의 재능을 살려낼 것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신사임당은 다른 소녀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아무리 타고난 재능과 빼어난 기질이 있었다 해도 여성 교육에 무지했던 그 시대에 어떻게 팔방미인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어린 신사임당의 재주를 누가 발견하고 키워낸 것일까?

아들딸의 차별을 두지 않던 아버지 신명화는 신사임당을 포함한 다섯 딸들이 모두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래서 딸들은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배워 익혔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양에 머무는 날이 많아서 그 공부는 끝까지 이어지지를 못했다.

신사임당의 비상하고 총명한 재주를 발굴하고 끝까지 책임진 사람은 놀랍게도 외할아버지 이사온이었던 것 같다. 율곡의 <어머니 행장>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머니는 평소에 묵적(墨跡)이 뛰어났는데 7세 때에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하다. 또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시늉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 율곡 이이, 「어머니 행장」

7세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그렸다니!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그렸다는 것은 그 그림을 신사임당이 보았다는 뜻이다. 당시 안견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인쇄물이나 화첩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기에 7세 꼬맹이가 안견의 그림을 볼 수 있었다던 가정환경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여기서 신사임당의 외할머니 최씨 가문의 내력을 더듬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최씨 부인의 할아버지 최치운은 세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사람이다.

화가 안견도 세종 때의 사람이니 두 사람 사이에는 친분이 있었을지 모르고 그래서 안견의 화첩 몇 점이 최씨 문중에 가보로 내려오다가 어린 신사임당의 교재가 되었을 것이었다.

최씨 문중은 여성 교육에 대단히 개방적이었던 가문 같다.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의 여성들은 가정에서 약간의 한문학을 배우는 정도였는데 최씨 문중에서는 경전(經傳)이며 시가(詩歌)교육도 시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임당의 외증조부 최치운의 둘째 딸도 어려서부터 무척 영특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직접 시경(詩經), 서경(書經), 효경(孝經)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녀는 문장이 뛰어나고 지조와 행실이 곧았다. 안귀손(安貴孫)에게 출가를 했는데 남편이 죽자 제문을 남기고 음식을 거부하고 목숨을 끊었다.

봉황이 함께 날 때 즐겨 노래 불렀는데
봉이 돌아오지 않아 황이 홀로 운다
하늘에 물어봐도 말이 없긴 마찬가지
하늘같고 바다같이 넓은 한이 끝이 없구나
(「도망부사悼亡夫詞」 출처 : 문경신문 글쓴이 엄원식)

위 시를 지은 최씨 부인은 사임당의 외조모의 고모가 된다. 이러한 친족관계로 볼 때 사임당이 글을 배우고 시를 짓게 된 배경에는 아들딸의 차별을 두지 않고 여성에게도 글을 가르치던 집안 내력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불 수 있겠다.

어쨌든 어린 외손녀의 재주를 가장 먼저 알아 챈 것은 외할아버지 이사온이었다.

이사온은 조부 이유약(李有若)은 삼수군수(三水郡守), 아버지 이익달(李益達)은 전라도 병마우후(兵馬虞侯)를 지냈지만 그는 소과(小科)에 합격해서 성균관에서 공부를 했으나 벼슬 없이 생원(生員)으로 살았다.

당시 강릉에는 최응현의 손자인 최수성(崔壽城, 1418-1450)이 살고 있었다. 최수성은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 들어 수학하면서, 정암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과 교우했으나, 학문에만 열중하고 벼슬길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시문, 서화, 음악 등 다방면에 뛰어난 인재였다.

이사온은 최수성에게 고모부였는데 두 사람은 11살 차이가 났지만 상당히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사람의 눈에 신사임당의 재주가 눈에 띄인 것은 안견의 화첩 때문이 아니었을까?

# 장면

이사온과 최수성이 안견의 화첩을 감상하고 있을 때, 꼬맹이 신사임당이 어깨 너머로 그 화첩을 들여다본다. 잠시 후 꼬맹이가 꼬물꼬물 그 그림을 흉내 내어 그린다. 그것을 본 최수성이 감탄을 한다.

"고모부, 이 아이에게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한 번 보고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려내죠?"

도대체 어떻게 7살 짜리 꼬맹이가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의 그림을 똑같이 그려낸단 말인가!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최수성은 탄복하고, 이미 어린 손녀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던 이사온은 눈이 번쩍 뜨여서 최수성에게 묻는다.
"조카, 이 아이의 재능이 법상치 않은 것이 사실인가?"

"예. 고모부, 안견의 그림을 그대로 배낀 듯이 그려냈어요. 정말 놀랍습니다."
순간 이사온은 가슴이 찌르르 하며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다.

진작에 이사온은 영특한 외손녀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개를 알아듣는 영특한 아이였다.

이사온은 자신의 처가에도 여성이 글을 배우고 시를 짓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외손녀 중에서도 재능이 뛰어난 사임당에게 경전 공부를 시켰었고 아버지 신명화 역시 그러한 장인의 뜻을 따라서 여자아이가 글공부하는 것을 지지했으리라.

그런데 이번에는 그림이었다.

이 아이에게 놀라운 화가로서의 소질까지 있다니!

학문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이사온은 손녀딸의 재능을 살려낼 것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아무리 신사임당의 재주가 특출했더라도 어른들의 전폭적인 배려와 후원이 없었더라면 예술가 신사임당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엔 여러 가지 색깔의 꽃, 나무열매 등을 따서 물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데 필요한 종이는 매우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다.

당시로선 결코 구하기 쉽지 않은 가지각색의 물감과 종이를 구해 사임당이 그림공부에 전념토록 한 어른들의 깊은 배려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양도 아닌 변방의 강릉에서 그 귀한 종이와 물감을 구해주며 그림공부까지 하게 한 것은 오직 외할아버지 이사온의 안목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신사임당은 풀과 벌레, 포도, 꽃과 새, 물고기와 대나무, 매화, 난초, 산수 등을 그렸다.

그 중 포도와 산수화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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