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공자의 7가지 교육원칙

리채운의 신사임당의 자녀교육법
[12회]공자의 7가지 교육원칙
-리채윤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 입력 : 2022. 01.13(목) 15:21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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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채윤의 신사임당 자녀교육법/CTN]공자의 교육철학은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교육사상이다.

공자는 누구나 배워서 깨치고 성인군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고 누누이 가르쳤다. 공자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7가지 교육원칙으로 정리해 놓고 있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시대의 교육은 그 목표가 분명했다. 공맹(孔孟)의 말씀을 따라 아이들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고 그들이 공부하면서 깨친 경륜을 세상에 펼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을 배출하는 것이었다.

유가의 교육 사상은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약하고, 어리석고, 어두운' 부분을 일깨워서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데 있었다.

공자는 배움에 있어서 중인(衆人)과 군자의 바탕이 따로 없음을 강조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자라면 누구나 배워서 깨치고 성인군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다고 누누이 가르쳤다.

조선시대는 남녀의 차별이 유별하고 양반 계층이 지배하는 계급 사회였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유가 사상 자체는 인간 모두를 포용하는 교육철학을 담고 있다.
특히 공자의 교육철학은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교육사상이다. 공자는 자신의 교육철학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있다.

① 젊은이들은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② 밖에 나가서는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③ 두루 사람들에게 예절 발라야하고,
④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는 신뢰가 있어야 하고,
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껴야 하며,
⑥ 어진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⑦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학문을 해도 늦지 않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교육철학이다.
놀라운 것은 조선시대의 초심자를 위한 수많은 학습교재가 공자가 제시한 7가지 교육원칙 하에 씌어졌다는 점이다.
공자가 제시하고 있는 일곱 가지 교육철학을 대략 살펴보기로 하자.

공자의 첫 번째 교육원칙은 '효도교육'이다.
맹무백(孟武伯)이 효를 묻자 공자는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하신다.(孟武伯問孝,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고 대답했다.
얼핏보면 동문서답이 따로 없는 참으로 애매한 대답 같다. 그러나 여기에는 실로 오묘한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부모는 자식이 병들까 전전긍긍하며 자식의 건강만을 걱정하니 자식이 건강한 것이 바로 효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가 이처럼 늘 자식의 안위를 근심하듯이 자식도 부모를 늘 깊이 생각하면서 부모의 마음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맺어지는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다. 율곡은 <격몽요결>에서 부모자식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자식이 태어날 적에 받은 본성과 목숨과 피와 살은 모두 어버이가 남겨주신 것이다. 그래서 숨을 쉬어 호흡할 적에 기맥이 서로 통하니, 이 몸은 나의 개인적인 사유물이 아니고 바로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기운이니 부모님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다.

천지(天地)가 낳은 것 중에서 사람이 가장 존귀한데 사람의 행동에는 효도(孝道)보다 더 큰 것이 없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감히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사랑과 공경을 다하여 부모를 섬기면 덕과 가르침이 백성에게 퍼져 온 세상의 모범이 된다.

오늘날 효는 구시대의 낡은 개념처럼 여겨지지만 오천석(吳天錫)은 <효(孝)의 이해(理解)》>라는 글에서 "효 사상은 부모가 자식의 생명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이 생명을 보존하고 키워 주는 것 또한 어버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교육원칙은 '공경교육'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바로서면 이웃과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마음 또한 저절로 생긴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사마우(司馬牛)가 근심하며 말했다. "남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유독 나 혼자만 없구나" 자하가 말했다. "내가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죽고 사는 것은 천명에 있고, 부귀는 하늘에 있다네.' 또 군자로서 사람을 공경하면서 예의가 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형제가 되는 것이니,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걱정하는가?"(*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我獨亡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형은 동생을 우애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는 말로 형우제공(兄友弟恭)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형은 날 사랑하고 나는 형을공경(恭敬)하니
형우제공(兄友弟恭)이니 이 아니 오륜(五倫)인가
진실로 동기지정(同氣之情)은 한(限) 없는가 하노라.

율곡은 <격몽요결>에서 공경하는 태도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람을 사귈 때는 마땅히 온화한 태도로 정성을 다 쏟아야 한다.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나 많으면 아버지처럼 섬기고, 열 살이 많으면 형처럼 섬기고, 다섯 살이 많으면 역시 어느 정도 공경해서 대접한다. 가장 조심할 것은 학문을 믿고 자기 스스로 잘난 체하고, 자기 기운을 자랑하면서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예절교육'이다.
예절이란 원래 근본에 충실하다는 것인데 근본이란 무엇인가? 남이 예절을 벗어나면 배우지 못한 탓이고, 내가 그러면 내 할 일 내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기 禮記》에는 '예는 스스로를 낮추어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이런 말을 하고 있다.

예(禮)를 바르게 하여 남과 접촉하는 것은 군자(君子)가 조심하여 지켜야 할 일이다. 공손하게 하여 예에 가깝게 되면 치욕(牌辱)을 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예절이란, 도덕적으로 또 지적으로 빈약한 서로의 성질을 서로 모르는 척하면서 비난하지 말자고 하는 암묵 속의 협정이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예절이란 결국 현재 자신에게나 주위 사람에게 맞는 실용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예(禮)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박종화는 "예란 역사를 가진 전통 있는 민족의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요, 예란 풍속과 어울려서 그 나라와 그 민족의 민도(民度)의 고저를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라면서 소설 <금삼(錦衫)의 피>에서 이런 묘사를 하고 있다.

사람의 새빨간 욕심이란 채우면 채울수록 밑바닥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강렬한 본능인 때문이다. 이 야수 같은 새빨간 본능은 사람의 마음 어느 한편 귀퉁이에 몇 천 년 몇 만 년을 두고 길고 강하게 뿌리 박혀 내려왔다. 그러나 사람은 도덕이란 옷과, 예절이란 굴레를 쓰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야수성을 뿜을 수 있다가도 반성하는 마디에 이르러서는 소스라쳐 돌아설 수 있다.

예절 바름이란 사람의 거짓 없는 마음 가운데에서 옳은 것을 추려 내는 기술이다. 거기에 단정한 몸가짐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기본적인 요건이다. 예의 바른 행동, 그것은 고귀한 성품의 최종적인 완성의 꽃이다.
율곡은 <격몽요결>에서 예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네 가지는 자기를 수양하는 중요한 요점이다. 올바른 예의와 그렇지 않은 예의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분별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세상의 이치를 끝까지 잘 연구하여 이것의 옳고 그름을 밝혀서,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 열심히 실행한다면 이미 생각이 반을 넘었다 할 것이다.

사물잠(四勿箴)이라고 하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원래는 《논어》에 나온 말인데, 이것을 송나라 때 정자가 보충 설명해서 유명해졌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
예가 아니면 듣지 말라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네 번째 교육원칙은 '신뢰교육'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성공한 리더의 조건은 바로 말과 행동의 신뢰이다. 인생에 있어서 믿음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없다. 공자는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주위에 친구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공자는 진실이 없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수레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사람으로서 신뢰가 없으면 그 괜찮은 사람인지 알지 못하겠다. 수레에 끌채 끝이 없고 작은 수레에 끌채 끝이 없으면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만큼 신뢰와 우정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에 대해서 알아보자.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죽마고우 사이인 관중과 포숙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관중은 젊었을 때에 집이 가난하여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했는데 언제나 포숙아 보다 많은 돈을 가져갔다. 그러나 포숙아는 이를 알고도 관중을 탓하지 않았다. 관중이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해 주었다. 관중이 전장에 나갔다가 도망쳐 왔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관중에게 손가락질을 했지만 포숙아는 관중이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며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 무렵 제나라에서는 소백(小白)과 규(糾)라는 두 왕자 사이에 정권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관중은 규의 밑에 들어가 일했고, 포숙아는 소백을 섬기고 있었다. 두 왕자가 싸움을 벌이는 통에, 관중과 포숙아는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었다. 한 번은 관중이 소백을 겨누어 활을 쏘았는데, 다행히 허리띠 장식에 맞아서 소백이 목숨을 건진 적이 있었다. 소백은 그 싸움에 이겨서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관중을 잡아들여 당장 사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그때 포숙아가 목숨을 걸고 나서서 환공을 말렸다.

"왕께서 제나라 하나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만으로 충분할 것이나,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십시오."
포숙아는 관중은 유능한 인재이니 절대 죽이지 말고 오히려 재상의 자리에 임명해달라고 간청했다.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그렇게 포숙아는 자기가 차지할 수 있었던 재상의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했다.
훗날 관중은 죽마고우인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찍이 내가 젊어서 포숙과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으나 그는 내가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를 위해 한 어떤 일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적도 있었지만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일에는 성패의 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 물러나곤 했었지만 그는 내게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는 나에게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는 참된 친구가 어떤 권력이나 부를 얻는 것보다 값진 것임을 깨우쳐준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의 훌륭한 보좌 덕에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覇者)가 되었는데 관중이 제나라 재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능력을 알아준 친구 포숙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재능보다 오히려 친구를 잘 이해해준 포숙아의 인간성을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때로 정치적인 입장이 달랐으나 죽는 날까지 둘 사이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들의 우정을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는 이렇게 읊었다.

손을 젖히면 구름 일고
손을 엎치면 비 내리니
우글거리는 경박한 무리 어찌 헤아릴 것인가.
그대는 관중포숙(管仲鮑叔)의 가난할 때 사귐을 보지 않았는가.
이 도리를 지금 사람은 버리기를 흙같이 하누나.
― 두보, <빈교행(貧交行)>

다섯 번째 교육원칙은 ‘박애교육’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대 사회에는 온갖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 뜻이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와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축구하는 바가 다르다고 으르렁거리고 싸운다면 사회는 지탱해 나가기 어렵다.

무릇 성공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을 편애하지 않고 두루 사랑해야 한다. 박애교육을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마음의 요소가 바로 덕(德)며 덕은 타인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실현하는 능력이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추구하는 바는 일치하지 않지만 모든 인간의 관심사는 박애다. 간디는 박애를 실천하는 데는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진리의 길은 좁고 곧다는 것을 알았다. 박애의 길도 역시 같은 것이다. 이 좁은 길을 걷는 데는 칼날 위를 걸어가듯이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줄타는 사람은 굳게 매어져 있는 밧줄 위에서 전 능력을 집중하여 춤춘다. 진리와 박애의 가는 줄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보다 큰 주의가 필요하며, 티끌만한 부주의가 있어도 떨어지고 만다. 다만 부단한 정진에 의해서만이 박애를 자신 속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박애를 실천하는 데는 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광수(李光洙)의 소설 <개척자(開拓者)>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위인을 야심적 위인과 박애적 위인의 2종으로 나누려 하노니, 순전히 자기 일개인의 욕망을 만족하여 동포를 희생하는 자는 전자에 속하니 중국의 진시황과 불란서의 나폴레옹 등이고, 동포(일국이나 전 세계)를 위하여 제 몸을 희생한 자는 후자에 속하니, 실로 우리가 감사하고 갈강하여 효측(效則)코자 하는 위인이라. 예수, 공자, 석가 등의 성인들과 링컨, 마치니, 나이팅게일 등 현인들이 그 예이니, 이네들은 실로 우리 인류로 하여금 수성(獸性)을 버리고 천지에 자랑할 만한 인도를 발휘케 하신 은인들이시라. 이제 가만히 그네가 이룬 바 사업의 동기를 보건댄 오직 열렬한 동정이로다.


여섯 번째 교육원칙은 '친인(親仁)교육'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학문이 바로 유학(儒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만남'이라는 유대관계가 이루어지는데 다 좋은 관계로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격 차이, 이념의 차이, 하다못해 사는 지방색에 따라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인 바로 '인(仁)'이다.

공자는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고 했다. 덕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고 이기적인 관계로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있으면 편안해 진다.

따라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모여들게 되어 외롭지 않다.
공자는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고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인덕이 있는 사람은 주변에 가르침을 주고받는 중요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멘토(mentor)라고 하는데 요즘에는 '멘토'란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또 멘토링(Mentoring)이란 말도 자주 쓰인다.
다른 사람을 돕는 좋은 조언자, 상담자, 후원자인 '멘토(mentor)'와 그의 돌봄을 받는 멘티(Mentee)의 활동을 일컬어 멘토링 제도라고 한다.

멘토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기원전 1200년 경, 고대 그리스의 이타카 왕국의 왕인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원정을 떠나면서 친구인 멘토에게 부탁했다.
"이번 원정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 그 동안 나를 내신해서 내 아들을 보살펴 주게."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아들인 텔레마코스를 친구에게 맡기고 전쟁터로 떠났다. 전쟁은 10년이나 계속되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길을 잃어서 10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멘토는 텔레마코스의 친구,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20년 만에 오디세우스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아주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해 있었다. 그 후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사에서 멘토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사람의 한 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로를 선택할 때일 것이다.
유치원 교육의 창시자로 유명한 프뢰벨의 경우를 보자.

그는 20살 때 아버지를 잃고 측량기사로, 회계 담당 직원으로 일하며 독일 각지를 유랑했다. 처음부터 교육에 뜻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항상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 천직은 무엇일까?"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측량기사로 일하는 중 우연히 페스탈로치의 교육이념을 받아들여 진보적인 교육을 하던 한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프뢰벨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자네는 건축가보다 교육자가 적임일세"라고 말하며 자기 학교의 교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했다. 이 뜻하지 않은 기회가 프뢰벨의 생애를 결정한 것이다.

프뢰벨은 2년 후에 교장의 친구인 부호의 아들 셋을 교육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이 세 아이를 데리고 페스탈로치의 학교에 들어가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연마했다.

프뢰벨의 경우 교장 선생님 같은 멘토를 만남으로서 자신의 진로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멘토는 인생의 선배로서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프뢰벨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우연히 한 학교의 교장을 만난 일은 실로 신의 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만남은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 만남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교육자로서의 프뢰벨도 없었을 것이다.

일곱 번째 교육원칙에서 비로소 '학문교육'이 등장한다.
공자는 『논어』 첫 머리에서부터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라고 하면서 부단한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자 염구(冉求)가 학문을 포기하려고 하자, 공자는 학문에 나아가는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깨우친다.

염구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합니다." 그러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까지 가서 그만두게 되는 것인데 지금 너는 금을 긋는구나."

공부는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재미도 있고 깊게 빠져들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훌륭한 업적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춘추시대라는 역사상 가장 어지러운 시대를 살면서 유가(儒家) 사상을 완성 시켰다. 공자는 창고지기며 목부(牧夫) 노릇을 하면서 도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고 정진했으나 정해진 스승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부지런히 세상의 이치를 탐구하여 20대에 이미 이름을 떨쳐 제자들이 따르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E.카네티는 <말의 양심>이라는 책에서 공자의 공부에 대해서 이렇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배우는 일은 공자에게는 끝없는 행복이다. 옛 것을 익히고 배우는 데 대한 관심은 늘 인간적인 것과 관계되며, 또 그것은 삶의 질서에 도움을 준다.

공자는 혼란한 춘추시대의 정치를 바로 잡아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관심을 가지면서, 수많은 제자를 포용하여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일생을 보내면서 이른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리를 역설했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의 중심에 놓인 것이 인이다. 공자는 최고의 덕을 인이라고 보고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모든 사람이 인덕(仁德)을 지향하고, 인덕을 갖춘 사람만이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앉아 인애(仁愛)의 정치를 한다면, 세계의 질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자는 도의에서 벗어나는 것, 학문을 게을리 하는 것, 정의를 듣고도 실행치 못하는 것, 착하지 아니함을 고치지 못하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어느 날 눈 먼 음악교사 면(冕)이 공자를 찾아 왔다.
공자는 그를 아주 친절하게 맞았다. 그는 계단에 오면 계단이라고 말하고, 의자가 나타나면 의자이라고 일러주었다.
두 사람은 의자에 앉았다. 공자가 면에게 주변에 있는 이것저것을 가르쳐 주었다.
"아무개는 여기에, 아무개는 저기에 있다."
면이 떠난 후, 제자 자장(子張)이 물었다.
"그것이 장님과 말하는 방법입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그렇다. 이렇게 해서라도 장님을 도와야 한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은 실천의 철학이 되는 것이다. 중용에 이런 말이 있다.

"배우기를 좋아함은 지(知)에 가깝다.
힘써 행함은 인(仁)에 가깝다.
부끄러워할 줄 앎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스스로를 아는 자이다.
제 스스로를 아는 자는 남을 다스릴 줄 알 것이다.
사람을 다스릴 줄 알면 가히 천하를 다스릴 능력이 있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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