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길에서 태어난 생각 세상에서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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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길에서 태어난 생각 세상에서 춤추다
  • 입력 : 2023. 01.25(수) 13:46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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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동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청량산 예던길의 퇴계 이황

예던길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은거하던 도산 서원에서 청량산까지 이어지는 아름답고 적막한 강변길이다. 천사, 단사, 가송, 너분들로 이어진 길을 따라 이황은 청량산에 들어가 공부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청량산은 ‘도산 9곡’ 중 7곡부터 9곡까지 노래할 만큼 아름답고 유서 깊은 길이다. 이 길을 기록한 기행문은 80여 편, 노래한 시는 2,000여 편이 남아 있는데, 안동시에서 생태 탐방로로 복원 조성해 놓았다. 예던길은 ‘녀던길’이라는 옛말의 현대어 표기이며 바른길이라는 의미이다. 봉화 청량산과 안동 도산을 잇는 국도 35번 주위의 강변길로 퇴계 이황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걷던 옛길이다.

퇴계선생은 은퇴 후 노년에도 서양의 소크라테스처럼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으며 그가 세상을 뜬 후에도 많은 후학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옛 스승이 다니던 길을 즐겨 밟았다. 예던길은 퇴계 선생이 봉화 청량산을 오가던 길을 복원한 길로 퇴계선생의 종택이 있던 곳에서 봉화 청량산까지의 50리 길이며 퇴계선생이 배움을 찾아 13세부터 숙부 이우를 찾아 청량산 오산당(지금의 청량사)까지 걸어 다녔던 길이라고 한다. 예던길의 예던이란 말은 요즘엔 안 쓰는 말이지만 예다는 “다니다”라는 뜻으로 “다니던 길”이란 정도의 뜻이다.

예던길은 낙동강과 청량산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이황 등 조선 시대 문인들이 즐겨 찾은 유서 깊은 곳이다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 청량산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시비에서 퇴계는 자연 속을 거니는 ‘유산(遊山)’이 독서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산을 거닐며 얕고 깊음, 근원을 배우고,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며 묘함을 깨닫고, 오르고 내려옴을 성찰한다. 그에게 산과 자연은 그에게 바로 학교이고 도서관이며, 학문의 전당이었던 것이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봇 뵈
고인을 못 봐도 녀던 길 알페 잇네
녀던 길 알페 잇거든 아니 녀고 엇졀고
(옛 어른도 나를 못 보고 나도 그분들을 못 뵙네
그분들은 못 뵈와도 그분들 행하던 바른 길은 앞에 있네
그분들 햏하던 바른 길 앞에 있는데 아니 따르고 어찌할고)


위의 시조는 퇴계 이황(1501∼1570)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중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이다. 특이하게도 예던길에 미쉐린 그린가이드 (Michelin Green Guide) 한국 편에서 국내 길 중 유일하게 별점을 주며 소개한 명품 탐방로이다.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물러남’의 미학을 추구했다. 대과 급제 후 평생 140차례 벼슬이 주어졌지만 사직상소를 올리고 나아가지 않은 것이 79차례다. 나아간 61차례마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호인 ‘퇴계(退溪)’는 ‘시내로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는 고향인 안동의 낙동강변에 도산서당을 짓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고, 제자를 길러내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善人多)’ 세상을 만드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

퇴계가 마지막으로 청량산에 오른 것은 63세 되던 1564년 4월 14일. 퇴계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던 벽오 이문량(1498~1581)과 손자 안도를 비롯해 10여 명의 지인들이 함께 하는 산행이었다. 새벽부터 밥을 먹고 출발한 퇴계는 현재의 안동 도산면 원천리 내살미마을인 천사(川沙)에 도착했다. 안개 낀 산 봉우리에 물결은 출렁이고, 새벽하늘은 곧 동이 트려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친구 벽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퇴계는 친구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자, 나귀의 고삐를 잡고 먼저 출발하면서 유명한 시를 남겼다.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先入畵圖中)!’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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