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숙의 수필산책] 아버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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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의 수필산책] 아버지의 일기
박희숙
ㆍ수필가
ㆍ세종FM라디오 방송 MC
  • 입력 : 2023. 01.25(수) 13:53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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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숙(수필가ㆍ세종FM라디오 방송 MC)
1960년 생의 국민학교 때

방학 때면 의례히 일기숙제가 꼭 있었다.
노는 게 바빠 일기 쓰기는 며칠에 한 번씩 썼으며 그나마 한꺼번에 몰아 대충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겐 더 싫은 것이 있었다.
집에서도 아버지의 철저한 감시(?) 속에 일기를 써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금산동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다.
3남 1녀가 있는 자식들 중 유난히 내게 일기 쓰는 법을 가르치셨다.

학교에서도 가끔 하는 일기 검사도 귀찮았는데 집에서까지 간섭을 받으니. 짜증을 많이 냈던 기억이 있었다.
가끔가다 어둠이 내려앉아 밤이 깊어 갈 때면 "오늘은 아버지께서 회식하시고 늦게 오시겠지? " 라며 은근히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그만큼 일기만큼은 철저히 검사하셨고 또 미니레코드판을 이른 아침에 크게 틀고 영어 원음 동요노래를 틀어 잠을 깨우기 위함과 영어노래까지 부르기를 시켰다.

그리고 아버지의 열정은 참 남 다르셨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미국의 평화봉사 단원이 왔을 때도. 아버지는 젤 먼저 달려가 짐 브룩 슨. 22살 미국인을 금산동학교로 데리고 왔다. 이젠 제자들에게 원어를 배우게 해야 한다는 절심 함 속으로 주위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실행하셨다.

그때 당시
금산군교육청에서는 예산이 없어. 안된다 했는데도 아버지는 기어이 삼촌 세명과 우리 형제들 대가족 속 제원 시골집에서 함께 먹고 자고 6개월을 살았다.

그렇게 십리길 신작로를 걸으며 학교로 출근할 때면 아버지는 꼭 나까지 챙겼다.
두 분의 영어회화는 계속되고 난 그렇게 귀에 담고 있었다.
미이크로 통학 버스가 지날 때면 뿌연 먼지 속을 뒤집어쓰고도 짐 브록스는 언제나 재밌다는 듯 씽긋 웃곤 했다.
그때의 학생들은 금산 최초의 원어민선생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3년간의 봉사는 끝나 서울 대학으로 떠났다.

그 이후
박근혜대통령 시절에 1970년대에 어려웠던 우리나라에 기꺼이 봉사해 주고 간 그때의 봉자들을 초청했었다.
그때 짐 브록스도. 왔었다.
그는 금산에서의 추억과 잊지 못할 박돈하선생을 만나고 싶다 하여 금산동중으로 왔다.
미리 연락받은 아프신 아버지와 드디어 상봉할 때 너무 기뻐 얼싸안고 눈물을 흘린 채 "Mr 박~~~"을 부르며 부둥켜안고 있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어렵고 힘들었을 때도 언제나 "하면 된다"의 깊은 아버지만의 철학이 있으셨다.
아버지는 '일기 쓰기','글쓰기','펜팔 하기','동시 쓰기' 등 점점 많은 걸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싫지는 않았다
아버지께서 담임 맡았던 금산동중학교 2-3반 교실에 쓰여 있었던 급 훈을 본 적이 있다.
" 하면 된다. " 그리고 " i can do it "이라는 영어 속담도 쓰여 있었다

우리 형제들에게도 늘 말씀하셨던 '하면 된다'. '해야만 된다'.' 해내고야 만다' 귀가 딱지 앉을 정도로 하면 된다를 세뇌시키셨던 아버지는 이제는 요양원 창밖을 바라보며 일기를 쓰고 계실 것 같다.

언제인가
i can. Do. It , 을 외치며 지금껏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5월 스승의 날에
부여 임천중학교 제자들이 요양원에 계신 곳을 물어왔다. 각 기관의 자리 잡은 제자들이었다.

그때당시 영어교사가 부족하여 가정선생님이 영어를 가르칠 때 전공하신 영어교사가. 임천중학교로 발령해 가시니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은 아버지가 묵은 하숙집 방안에 밤늦도록. 앉아 영어를 배우겠다고 몰려왔다고 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보충수업을 하게 된 셈이었다. 그때도 '하면 된다,,' 를 가르치셨다는 제자들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배웠던 계기로 좋은 대학을 다닌 것이 다 박돈하 선생님 덕 이라며 8명의 제자들이 찾아와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리는. 장면은 아직도.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아버지는 이젠 소중한 그 제자들을 기억을 못 하신다
구순이 넘은 현실 속이기 때문이다.

일기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아버지!
'하면 된다'의 깊은 철학과
어쩌면 머릿속에서도 아버지만의 일기를 쓰고 계시겠지.

오늘따라 더욱 그리운 아버지
이번 구정 설날에도
빨리 뵈어야겠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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