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망나니의 다른 이름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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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망나니의 다른 이름 회수
  • 입력 : 2023. 03.24(금) 12:23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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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조선 순조의 능은 두 번이나 옮기는 수난을 겪은 후 처음 능자리를 잡은 지관 이시복이 능을 잘못 잡았다는 이유로 참수당했다. 그런데 지관의 참수형을 집행한 망나니가 정해진 처형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처형해 조정이 발칵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났다. 순조는 사망한 지 22년 뒤인 철종 때 현재의 서울 헌인릉으로 옮겼다. 순조를 현재의 인릉 자리로 옮긴 데는 철종의 신통력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참수당한 이시복의 시신을 확인해 보니 망나니에게 난도질당한 상태였다. 이유는 망나니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망나니는 물론 현장에 입회한 의금부 도사와 전옥서 관옥도 처벌받았다고 ‘승정원일기’에 나온다.

살펴보면 망나니의 행패는 이뿐이 아니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떼 지어 시장에 나타나 물건을 빼앗고 돈을 갈취했다. 쌀가게에 들어가서 큰 바가지로 쌀을 마구 퍼 갔다. 주인은 감히 막지 못하고 손님은 더럽다며 피해 버렸다. 차츰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보다 못한 관청이 나섰다. 관가의 돈으로 땅을 사서 그 소출을 망나니에게 주었더니 행패가 사라졌다. 철종 때 기록인 ‘임술록(壬戌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망나니는 조선시대 참수형의 집행자인 회자수(? 子手)는 예전에, 군문(軍門)에서 사형수의 목을 자르던 사람이다. ‘회자’를 들고 왕을 호위하던 사람들을 뜻한다. 이 ‘회자’는 청룡언월도와 비슷하게 생긴 긴 칼이다. 칼날은 청룡언월도보다 더 높다. 그러나 이 회자는 실전용이 아니라 위엄을 과시하고 공포를 심어주는 일종의 전시용 무기였고, 포수(砲手), 궁수(弓手)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회자수(협도(鋏刀)는 삼국지의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와 비슷하다. 회자수는 붉은 옷차림에 붉은 두건을 쓰고 회자수를 들고서 대장을 호위한다. 실전용이 아니라 위엄을 과시하고 뒤로 물러서는 자들은 목을 벤다는 공포를 심어주는 의장용이기도 하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사형 장면에서 보면 무릎을 꿇고 앉아서 목을 베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영화적 요소를 위한 연출일 뿐이었다. 실제는 사형수를 땅에 엎드려 놓고 단두대처럼 칼을 내리쳐 형을 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랜 도어의 저서인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통해 조선의 사형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달구지가 사형집행장에 멈추자 사형수들은 등 뒤로 팔이 결박당한 채 엎드리게 했다. 조선 시대에 참형을 집행할 때는 이렇게 수형자의 윗옷을 벗기는 게 관례였다. 이는 옷깃 때문에 목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회자수가 수형자의 목을 제대로 내려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 뒤 사형 집행인은 그들의 머리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날이 무딘 칼로 계속해 내리쳤다.’라고 적혀 있다. 또 한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된 윤준(尹浚)이 참형(斬刑)을 당하게 되는데, 가족들이 망나니에게 돈을 주지 않자 화가 난 망나니가 일부러 단번에 목을 베지 않아 고통스럽게 죽였다는 기록이 야사(野史)로 전해지고 있다.

사형집행기관에 따라 망나니라는 이름을 달리 불렀다. 군대에서 사형을 집행할 경우 ‘회자수’라고 불렀으며 지방에서는 ‘도우탄’이라고 불렀다. 근대에 들어서는 한양의 교도소인 전옥서에서는 행형쇄장(行刑鎖匠)이라고 불렀다. 감옥에 갇힌 사형수가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사형을 집행하면 면죄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원해서 사형을 집행하고 자기 형을 면한 사례가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었다.

우리에게 대체로 알려진 사형집행자의 이름인 ‘망나니’도 여러 설이 있다. 이를테면 도깨비라는 뜻의 ‘망령(?)’에서 나왔다거나 난동을 뜻하는 ‘망란(亡亂)’에서 왔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의 이름이었던 ‘막란(莫亂)’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막란은 우리말로 해석하면 마지막으로 낳은 이라는 뜻으로 막내를 뜻하니, 막내아들이라는 뜻이다. 회자수는 사형 집행인이기에 그들에게는 그때 빼고는 경제적인 수익이 없어 생활이 빈곤하였고, 그렇기에 횡포 또한 잦았다. 관아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들에게 곡식을 제공, 토지 임대 등 구휼 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임술록 따르면 이로써 망나니의 횡포가 잦아들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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