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칸타타, 대전의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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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칸타타, 대전의 황홀
  • 입력 : 2024. 01.10(수) 20:15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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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칸타타, 대전의 황홀


1
그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한창 대전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19년이나 감옥살이한 장발장이 훔친 빵은 깜빠뉴였으며 나도 이 빵을 마음으로 훔쳤다가 몇 년을 밀가루 포대에 갇혀 지냈다.



그 학인이 내게 말했다

대전 황홀 어뜌?



나의 어린 시절의 주요 무대는 온통 대전이었다

요즘의 언어로 대전, 그야말로 대전이었다

이렇게만 몇 개의 단어로 시작만 했는데도 벌써 신이나 엉덩이와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탱고의 리듬을 탄 여인의 손가락을 닮았다.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좀 차분해야 한다

왜냐면 이러다가는 대전에 대한 이미지를 언어로 변환하는데 있어 요점이 이상하게 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추억의 대전은 충남도청의 뒤 선화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도 충렬탑으로 기억되는 영렬탑과 그 주변의 판자집들과 행자엄마네 단추공장, 그 위에 무서운 포대령네, 그리고 소슬 대문이 그럴싸한 공주갑부 김갑순손녀 향자누나



그리고는 한참 시간이 흘렀으리라

불타버린 대흥동의 일본신사의 화기火氣 내음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은 수녀원 울타리가 된 탱자나무의 기다란 가시 때문이었을까 하고

그 앞 개천에는 미군 군수물자를 감싸았던 기름종이로 꽁꽁 싸인 보따리가 궁금해 또래의 친구들과 돌팔매질로 풀어보니 어머나 세상에 죽은 태아가 있었으니 이를 어쩌랴

부랴부랴 잽싼 동무들이 경찰지서에 신고하고 나니 기자들도 행인도 모여들어 거짓말 조금 보태어 인산인해였다.



그 뒤로 나는 미군들의 츄잉껌을 끊고 거칠고 향도 익숙하지 않고 굵은 설탕 가루 덕지덕지 붙고 무지무지하게 딱딱한 국산 송진껌Chewing Gum을 씹기 시작했다.

영렬탑의 동쪽으로 오르는 길은 내가 자주 놀이하느라


2
왜 그랬는지 모른다

김갑순의 손녀라는 것만 아는 추억과 지금도 들리는 재잘거리는 소리를 통해 기억해낸다

누님에게 듣기는 했으련만 육십 년이 훨씬 넘은 어렴풋한 몇 개의 기억들 속에 끄집어내어 보니 서리한 푸른 밀을 훑어 내어 어설픈 불질에 구워 먹던 그 비스무리한 맛이

손 위 누님과 학교 가는 길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왜 올라가 왜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와 하얀 이의 미소의 향순누나에게 주눅이 들었는지도

왜 그 집에 들어서면 우울한 기운이 나에게 달려들어 잽싸게 뛰쳐나가고 싶었는지도

김갑순 그이가 아프기에 큰 소리로 말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더욱 싫었는지도

내 누이의 친구라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한참을 지나서인지도 모른다

전혀 생각도 않다가 학인 김백겸이 쓴 대전 블루스를 보고 시작되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선화초등학교 앞에는 긴 장대가-이것도 이미 수십 년은 된 오래디 오래된

(안나프르나 토랑가 오르는 길에 만났던 외롭고 가여워 보이는 대나무 룽다의 끝에 펄럭이는 경전의 허무함과는 전혀 다른)



어린 소년의 호기심으로 목척교 건너 신도극장을 지나 중앙시장 입구에서 산 오리 새끼 두 마리.

삐악대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일까, 아니면 봄의 푸르름처럼 생명을 구가하는 그것들의 모습이 좋아서일까, 쪼르륵 달려간 집 마당에서 놋대야에 한가득 물을 담고는 고놈들 두 마리를 풀어놓았다.

물 밖으로 나오면 또 올려놓기를 몇 번 하다가 덜덜 떠는 몸짓이 서러워 보여 수건으로 감싸고는 어머니 몰래 벽장에 감춰 놓았다가 이른 아침 찾아보니 이미 생사를 달리했으니 막막하다는 생각이

어머님께 쓸데없는 짓 했다고 꾸중 듣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이 3관구 사령부 앞 언덕에 헌병대가 서 있다

그곳의 나팔 스피커에서는 해가 뜨기도 전에 시작하는 군대놀이를 저녁까지 계속해댔다

거리에는 상이군인들로 넘쳤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부상자들의 외침이 넘실대는 시대였다

말해 무엇하리, 나라를 지키겠다고 공산당을 무찌르겠다고 나서거나 그야말로 맨주먹으로 막아내었으니 어찌 모두 말하리오만



여하튼 나는 그 군가가 하루종일 넘실대는 헌병대 경사진 경사로에 오리를 묻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우산을 받쳐 들고 향순이 누나는 내 옆에 있어 주었다.

紙雨傘 받쳐 든 손이 너무 희어서 파란 핏줄이 튀어나올 듯 하였다.

아마 이 장면도 내가 작위적으로 만든 슬픈 장면 이었을까.

더욱 슬프게 하여 간직하려는 장치였을까.

내 누님마저 빼놓은 기억이라서


3
나는 대전 보문산의 전설, 비밀을 하나 기억한다.

아마도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선화초등학교 가는 길, 하얀 타일이 눈부시게 붙은, 아마도 4층 빌딩 옆 이발소의 판자로 높이를 마친 의자에 앉아 면도솔을 비누에 비벼 거품을 내고는 뜨거운 연통에 스리슬쩍 문질러 내 머리의 테두리에 바르고는 아직도 서슬 퍼런 면도날을 가죽 줄에 문지르고는 섬뜩섬뜩하게 애송이의 머리카락을 베어냈던 이발소가 있다.

기억하기 싫은 슬픈 기억을 잊지 않은 것은 아마도 아버지가 이발소 아저씨에게 얼마 전에 죽은 동생에 대한 인사 때문일 것이다.



여름의 잠 안 오는 날에는 마루에서 삼 남매가 하늘의 별을 보고 아직 오시지 않은 키 큰 아버지를 기다리며 있을 때

어머니의 가슴 조이는 슬픈 외마디 울음소리에 우리는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영창이 두 개나 되는 건넌방에서 까슬까슬한 군용담요 뒤집어쓰고 강물에 떠내려가는 양 한데 엉켜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은 또 어쩌고

심청이 떠나 보내는 심봉사의 마음도 이랬을까 이러했을까



그 후에 들었다

죽은 동생 문희를 하얀 포대기에 싸 보문산에 가 아버지가 묻고 왔다는 것을

그 후에 나는 동무들과 보문산에 놀러 가서도 진달래꽃을 따먹지 않았다

절대 따먹지 않았다

불그스름한 진달래 꽃잎이 문희의 손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는 병이 나 몸져누우셨고 활옷 입은 무당의 소란스러운 굿판도 벌어졌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그것들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 또 하나의 보문산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니

바로 다정하기도 하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내게 이야기해준 보문산 꼭대기 이야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보문산 꼭대기에 작은 초소를 지어놓고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은 나라님의 걱정을 해결해주기 위해서였고

수많은 귀신이 달려들어 해치고자 하였으나 이겨내었으니 너도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라고 하는 사회책 이야기와

어머니가 어디를 가셨는지 맛있는 설탕밥을 해준다며 석유 곤로에 끓는 솥단지 옆에서 행복해하는 아버지와

밥상에 올려진 밥이 첫 수저와 두 번째 수저를 빼고는 단맛에 질려서 평생을 단맛을 싫어하게 된 기억이.



아 또 하나, 아버지가 세발자전거를 가져오셨으니 동네에서 나뿐이었고 아마 제니스 라디오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종종 출근하는 아버지를 따라 대전고 건너편에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요술 상자 같은 군인극장 앞에까지 자전거를 타고 따라갔고

어떻게 그랬는지 점심 무렵에도 따라갔는데 아 글쎄 길모퉁의 청요리집에서 짜장면을 사주시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그 무렵에 입에 달고 사시는 말씀이 남들은 기생집 앞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들어갔다가 잃어버리고 하는 데 네 아버지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자랑이었다는 기억의 또 뽑기


4
그때는 모두가 같은 크기의 옷을 하나 같이 입었다

먹거리가 부족하니 누구도 살이 찐 사람이 없었으리라

아마 이때 나온 말이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었을 것이고 어린 눈에도 거리의 사람들은 쫓기듯 몰려가고 모두가 이리저리 바빴다.

인간이 인간의 적이 되고 빵 한 조각과 두 조각의 차이가 이데올로기로 쉽게 나타나는 현장의 모습이 대전 중앙시장이었다

대전역전이 가까운 골목길에서 과자를 굽고 있는 삼촌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쳤다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모습과

국수를 말아 파는 노점에서 모두가 허겁지겁 입에 쳐넣는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넝마 같은 아이에게 선뜻 국수 한 그릇을 내어주던 평양 아줌마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구워준 것은 그나마 다행 중 다행.



나는 큰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내 누님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덜 받았다

내 누님은 나보다 눈치도 빨랐고 머리도 좋아 공부도 잘했다

나는 가끔 일등을 하였는데 누님은 매번 일등이고 전교 1등도 곧잘 했다

더구나 어찌 그리 집안 살림을 거드는지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어머니는 자랑을 해대시니 용돈도 얻어쓰곤 해서 나는 몰래 서운해하고는 시침을 뗐다



한번은 빈 사이다병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충남대 밑에 들판의 논에 메뚜기를 잡으러 갔었다

벼가 노랗게 익어 탐스럽게 영글은 논가나 논둑을 따라 열심히 메뚜기를 잡아넣고 있었는데 그때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는 여자 목소리에 둘러보니 나를 따라온 누님이었다



군인극장과 신도극장에서 아버지와 같이 본 서부영화 하이눈의 게리 쿠퍼와 역마차의 존 웨인처럼 너무나 멋지게 달려가 건방지게도 한 마리는 누님 무릎 위까지 다른 몇 마리는 발가락 사이와 가늘고 긴 종아리에 달라붙어 아까운 붉은 피를 흘리며 빨아대고 있던 그놈들을 손에 흙을 묻혀 문질러 죽여버리고 나도 그들의 남자 세계에 기특하게 승차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정신분석의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이 아니더라도 슬쩍 눈치챌 수 있는 내 안에 숨어 있던 기사도騎士道라는 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된 순간이었으니 지금도 치렁치렁한 또 다른 나였으니






점점 사라지는 기억의 미세한 조각들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점점 사라져 가는 솟을대문 안채에 사는 미국으로 떠난 김갑순의 손녀 향순누나 때문인 것이 이제야 확연한 것은

그것은 아마 그녀가 입은 옷이 아무도 입지 않은 일본산 옷이었거나 웃을 때 보이는 하얀 치열이 예뻐서만은 절대 아니었으니



내 누님이 그녀에게 말했다

내 동생이 거머리를 다 떼어주고 내 던진 사이다병도 찾아 주었는데 아니 글쎄 지 발에도 거머리가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남자라서 그런가야 그치

다음날 학교 가는 길에 그녀에게 누님이 건넨 말에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그 예쁜 하얀 이를 눈부시게 드러냈고 어느 날 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공주가 되었다



미국이 그렇게도 좋은 곳인가

더구나 그곳이 버들잎 살랑대고 대전천을 내달리는 소금쟁이도 많다면야 모르지만

삼일오 부정선거에 대전시민회관이 눈 매운 최류탄의 거리가 아니라면 모르지만

비 오는 날이면 더 슬퍼지는 보문산의 내 동생과 헌병대 밑 오리의 무덤이 있다면 모르지만


5
나는 걷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내 등은 껍질이 몇 번이나 벗겨졌는지 모를 정도였고

충남대 앞에는 군인들이 페이로다를 가지고 연신 붉은 황토밭을 길로 만들기 위해 밀고 또 밀어냈고 가끔은 잠자리비행기라고 불렀던 헬리콥터가 검은 선글라스를 낀 미국인들을 내려 놓고 가기도 했지만 페이로다가 다니면서 만든 바퀴 자국이 쏟아낸 흙 과자가 신기해 검정물들인 반바지에 넣고 와 동생들에게 던져주곤 했던 기억도 그러하고



선화동, 그러니까

도청 후문을 나와 반듯한 길이 어느 정도 이어지고 일본식 집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지던 어느 늦은 봄날에 도청 뒤의 수영장은 김이 모락모락했다

지나가는 글에 슬쩍 손을 넣어보면 아직도 차가운 기운이 완연한데도 어떤 사람은 진심으로

송장헤엄backstorke과 자유형freestyle을 한껏 하고는 풀장을 나와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는 장 닭이 홰를 치듯 물을 털고는 옷을 걸치고 사뿐하게 큰 걸음으로 나가던 그 어른이 사내로 태어난 숙명의 멍에를 좀 가볍게 하지는 안았을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길, 그러니까 충남대를 가기 위해선 선화동에서 대전 삼거리의 3관구사령부 정문을 지나 철조망이 쳐진 보문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도랑을 타고 올라야 한다. 처음엔 맑은 물이 흐르는 모양새였지만 점점 탁해져 나중에는 별별 쓰레기가 바람에 춤추다가 코를 박고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망자들의 골짜기였다.



그래도 호기심을 두 눈에 켜고 충남대 일층 강의실, 유리창이 몇 장 깨지고 휑한 바람만 서라벌처럼 무거운 역사만 가득한 그곳, 가끔 새들이 깨진 창틀에 앉았다가 인기척에 놀라 웬만해서는 죽어서도 못 나가는 강의실에 갇히는 슬픈 새들의 시나리오

그러나 어린 소년 나에게는 기쁨과 놀라움을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것과

작은 새가슴에서 그렇게 크게 심장 소리가 쿵쾅거릴 줄은 그때 알았다는 것과

쓰레기장에 갖다가 버리는 타다남은 조개탄을 여러 사람이 주어다가 그것을 물에 개어 페치카에 넣고는 밥을 짓는 것도 그때 겨우 알았다는 것과

이제는 나도 깡통에 주워 담아 집에 가면 어머니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는 것과

영렬탑 입구에서 호스돈 여중의 정문을 지나 유성의 큰 길이 뚫리기 시작한 탄방의 쑥뱅이까지

어린 나의 관할구역은 제법 넓었으나 이도 곧 마치게 되었으니 어쩌랴만


6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어느 날 서울 가셨던 아버지가 큰 결심이라도 하신 양

내게 이십 원을 주시며 서울로 이사 가야 하니 이발소를 다녀오라 하셨을 때

그 도시에 대한 동경이나 기대보다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힘차게 감아 안았음을 보면



곧바로 달려간 대전 소방서 앞 친구 영환이한테 달려갔던 일과

다시는 못 올지 모르는 늙은 철새의 예감처럼

바람처럼 안개처럼 내 마음은 마법에 걸려 무언지 모를 감당키 어려운 거대한 내 역사의 슬프디슬픈 톱니바퀴에 끼이고 말았고

나와 동생은 돈암초등학교에 누님은 이화여중에 던져지고 내 반에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안성기가 나보다 두 뼘은 더 큰 키를 가지고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장면과 미군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선명회합창단의 몇 살이나 더 먹은 아이들이 두려웠으니

그게 서울이었다고



그렇게 견뎌 내어야 하였던 4.19 무렵의 서울 입성기

그래서인지 나는 남보다 더 많은 대전에 대한 추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리며 황홀한 신기루를 보았다.



지금도 코가 아릿한 추억이 한껏 춤추는 보문산 산꼭정의 나무로 만든 산감山監의 초소와 대흥동 방주에서 점심도 잊고 탔던 썰매와 아버지가 사주신 세발자전거와 제니스 라디오에서 나오던 소리의 도가니들



그리고 논밭을 헤매며 숱하게 잡았던 개구리와 뽑은 다리를 구워주시며 소금을 뿌리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분이셨던 단추공장의 행자 어머니며

대흥동 수녀원의 탱자나무의 가시와 그 밑에 떨어진 노랗게 익은 탱자를 얼굴에 가시 자국 내며 꺼내려고 애쓰던 소년 나는

아직도 기억하는 서대전의 저녁 무렵에 보여주던 붉디붉은 노을들

교실이 불타버려 몇 해를 운동장에서 야외수업을 했던 장면들

얼마만큼의 시험지를 무겁게 들고는 선생님께 심부름하던 장면들

소풍을 원족遠足간다 했으며 그 날은 비가 왔으며 그것은 하늘에 오르려는 이무기를 소사 아저씨가 죽여서 그런 것이라는 기억들과

소사 아저씨 숙직실에 걸린 큰 솥에 하나 가득 물을 잡고 미군이 준 분유를 몇 됫박 넣고 끓여 내가 겨우 들었던 큰 주전자에 가져와 미제 플라스틱 컵에 한 잔씩 따르고는 선생님이 내가 보기에도 거룩하고 웅장한 의식이 진행되는 장면들



그럴 때면 어린 소년도 무언가 어른들을 흉내 내는 애국자가 되고 마나니

그렇지 아니한가,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그 날까지 외치자는 대목에서

어린 소년의 입에서 이승만 할아버지 맛있게 먹겠다고 인사하는 대목에서

거룩한 이준 열사가 나타나지 않으랴 방정환이 같은 사람 나타나지 않으랴

백마고지전투처럼 포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드는 청년들 없으랴

7
그렇게 사람들의 가슴은 끝없는 감동과 끝없는 허무와 끝없는 영혼의 펄럭거림으로 산다

때로는 티벳의 고원에서 때로는 브라질의 아마존에서 때로는 백두산 넘어 바이칼의 호수에서 부는 바람이 우리의 영혼을 깨우듯이

말도 생각도 하지 않아도 우린 단숨에 한 번에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연인과 함께 가는 동반자들 아니던가

피아노집 아들 영환이가 떠나는 내게 작은 쪽지 편지 한 장을 수줍게 전해주듯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미 독립 만세의 연판장처럼



떠나는 대전발 서울행 9시 50분 완행열차에 나는 바보처럼 탔고

김치도 제대로 못 먹고 할머니가 쌀밥에 달걀 깨넣고 참기름에 기코망 간장을 넣고 비벼줘야 먹었던 순하디순하고 약하디약해 빠진 영환이는 개찰구의 먼발치에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리고선 서울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쏜살같이 벌어지며

이별하고 헤어졌다 다시 이어져 길로 들어선다



이것을 나는 인생길이라 했고

자크 라카리에르도 장 르브렁과의 대화에서 그렇게 말했으니

걷기와 쓰기의 필연적인 관계를 그리 한 것이다

하나의 서사에 등장하는 것들의 공명共鳴과 낯설음unfamiliar의 칸타타가 시작된다

이렇게 짧은 오라토리오가 형식에 사로잡히는 것처럼

미국으로 간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닌

아버지가 사다 주신 일제 책가방 란도셀에서 나는 가죽 냄새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색깔은 다르지만 냄새가 같았으니까

이별보다 아픈 사랑이 바로 이것이길 늙은 소년의 이야기는 아마도 계속되지 않을까 하고.

.

특이한 건축물의 영창의 넝쿨처럼 벽을 타고 자라 온통 나를 덮어버린

나의 대전 황홀의 칸타타가 독창과 중창에서 몇몇 더 합한 합창이 기악 반주로 짧은 오라토리오 형식의 노래를 시작했고 그렇게 마쳤다.

8
낡아 버린 시간에서



너는 거기 나는 여기

조그맣고 조그맣게

흑백사진에 남은

몇 장의 이미지



꽃 피우지 못한

메추리 알처럼

조금은 촌스러운

그러나 아름다운 봄바람에 망각의 몸을 푼다



성큼성큼 하게

몇몇 입속에 녹은 세월을 향하는 바람

찰칵하는 노름마치의 북채

비브라토의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는 연가



아직도 촌스럽지 않은

대전역 가락국수에 뜬

유부 몇 개

송송 썬 대파



곱씹으면 음식물처럼 단맛이 나니

얼마나 거룩하게 다행이고 다행인가

삶의 길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생각이

하나의 생각으로 합쳐져서 내 소설의 서사를 거미집처럼 꾸며대는



내가 걸었던 도청에서 대전역까지의 신작로 길과

중앙시장에 이르던 골목골목의 아롱아롱한 길과

보문산 골짜기에 숨어 살든 너구리의 이야기들이

내 생명의 눈이 되어 커다란 잎사귀와 열매로

늙다리 꼰대의 수확물로 내 주머니에 가득하다



더 늦기 전에 정신을 가다듬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둔 우렁색시에게 달려가

사모치게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려는 상상만으로

힐끔거리며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나는 글쟁이의 밑줄 쫘악의 긴 빨간줄

하나.

9
서울에 와서 알았다.

어린이날이 있다는 것과 방정환선생님의 이름 앞에 붙은 소파라는 또 다른 이름 하나가 왜 있다는 것을



내가 피할 곳은 도서관이었다

그래 봐야 교장실 옆에 어디쯤 누렇게 변한 고서적인지 새 책인지가 구별이 안 되고 교실보다 약간 큰 넓이에 내 키보다 두 배는 큰 책장에 꽂인 책들이 돌보지 아니하여 실긋실긋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나는 거기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은 작고 종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름만 도서관인 그곳에서 방정환을 만났다.

그이는 어린이에게 높임말을 쓸 것과 어린이의 위생을 돌볼 것과 어린이의 건강한 정서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는 대목을 몇 번이고 읽으며 대전을 떠나게 한 아버지에게 말하고자 했으나 결국은 이루지 못하였으니 나만 그랬으랴



지금도 그러지 아니한가.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지 아니한가.

그렇지 않다는 현실이 안타까워 속에 열불이 나므로 그는 빙수를 좋아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어쩌랴만

나도 어린 시절에 오랫동안 빙수를 좋아했다

그러는 나에게 속 버린다 하시며 녹으면 물 되는데 왜 헛것을 좋아하느냐고 하셨으나

돈암동 전차종점 차고지 옆에 태극당에서 가끔 용돈을 뭉텅 쓰고 했으니



그래도 빙수의 처음은 대전이었다. 선화초에서 중앙시장을 가다 보면 선화교 끝머리에 두꺼운 천으로 뚤뚤 말아놓은 얼음을 나무상자에서 꺼내 빙수기에 올려 언덕을 오르는 기차 소리를 내며 유리그릇에 갈린 얼음이 떨어지고 빨갛고 파란 식용 물감을 쳐 대고는 미숫가루 몇 수저 듬뿍 올리면 그야말로 천국의 맛인 양 먹었던, 그래서 얼얼했던 나의 볼 따귀



아니 근데 소파선생은 유리처럼 맑고 하얀 얼음을 갈아내어 딸기물과 이름 모를 파란 설탕물을 뿌려 서늘하고 달콤한 빙수를 열 몇 그릇씩 먹은 것은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 하니

어린이에게 기쁨을 빼앗고 어린이에게 슬픔을 지어주는 사람을 탄하던 그였으니 논쟁은 여기서 마치지만



그래도 선화교 밑 가설극장에서 커다란 백열전구 켜놓고 여자들이 중국의 가극歌劇처럼 진하게 화장을 하고 연극을 하면 사람들은 넋을 잃고 아마도 수십 개는 넘을 드럼통을 걸어놓고 군복을 염색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하고



나는 그렇게 책벌레가 되었다.

한때는 나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아니 실제로 그랬던 49년생 유차희는 학교도서관의 책을 제일 많이 빌려와 읽었다고 자랑하는 대목에서 향순이에게 거머리를 종아리에서 떼어주던 내가 데자뷔가 되는 장면들이 저장된 기억의 자취들이 듬성듬성 나타나는 장면을 몽상 학인이 들으면 뭐라고 할까만

그 죄였을까, 돈 떨어지면 어김없이 국민은행의 내 계좌로 송금을 척척박사이고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제법 폼나는 금빛 골든 카드로 달러를 찾아 호기롭게 썼다는 슬프지 않은 슬픈 이야기

아무튼 내 누님은 한동안 대전여중의 친구들과 아직도 편지를 주고받는 설레는 일을 계속하고 있기나 한지에 대해서

10
그녀가 죽었다.

향순이와 함께 묻었다.



허무

허무하다

이 단어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 것인가



허무虛無. 아무것도 없이 텅 빔,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매우 허전하고 쓸쓸한 인생의 허무라니. 형상이 없어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우주의 본체가 된 그녀.



허무는 니힐리즘N nihilism의 虛無主義로 춤을 추고 다시 니체는 러시아의 소설가 투르게네프가 사용한 허무주의 개념을 차용해 최고가치의 탈가치에 의해 초래되는 의미상실의 경험상황, 절대적 무의미함을 경험하는 상황을 허무주의 현상으로 규정하던

그래서 향순의 그녀는 내 단편의 주인공으로 태어날 위버멘쉬가 아닐지

그래서 진정한 모든 가치의 전도가 되리라만 더구나 현대에 들어 어차피 사람들의 선호가 가격과 가치를 결정하는 교조주의가 된 것처럼 내 마음에 깊이 품은 향순에 대한 심적 투자일까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군내와 지린내 가득한 프랑스의 국경을 지나 만난 검은 숲 슈바르츠 발트를 만나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소년 한스 기벤트를 나와 비슷하게 표현하는 장면을 만난다. 그가 묘사하는 풍경이 딱 대전의 보문산과 아름답게 반짝이는 유천동 냇가였으니 이 어떠한가. 하지만 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과 관계 맺기를 불편해하고 두려워한다 흔히 말해 사내의 친교는 힘을 중심으로 하기에 나보다 큰 아이들을 만났을 때 두려움과 해내야 한다는 엉뚱한 상상으로 아드레날린을 증가시켰던 기억과



이윽고 소설의 절정 부분에 이르러 휴가를 떠난 곳에서 사과즙을 짜는 풍요로운 계절에 한 소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그녀마저 떠나버리자 한스는 아버지가 권하는 데로 톱니바퀴 만드는 기계공이 된다는 독일의 교육제도를 통한 획일화의 슬픈 이야기

하지만 그는 나처럼 영원히 만나기 어려운 미국으로 떠난 향순이는 없었고 대신 죽음을 통해 화려한 촛농으로 만든 루카스의 날개가 되었던 그


아울러 나에게 하일러 같은 친구도 없었다. 어디서고 언제든지 두각을 나타내었던 나는 5학년 무렵에는 공부만 아니라 노래까지 출중해 교장실까지 진출하는 그야말로 킹카의 다크호스였다. 이미 오디세이와 대문호라는 톨스토이와 셰익스피어와 그리스신화를 뀄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마도 전학에서 온 두려움과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한데 어울려 지금의 괴물이 탄생했다는 부전공이 심리학인 나의 소크라테스식 변명



식당의 중앙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국가대항전이었고 몇 단계나 높은 목소리와 빠르기로 시청자를 쥐락펴락 중계하고 있었다. 재미난 것은 모두가 엄숙하게 검정 양복을 하나같이 입었다는 것이고 하나같이 바로 위층에서는 저 그들의 부모나 인척들 그도 아니면 친구같이 관계된 사람들의 신체가 지글거리며 타고 있으며 또 한 그분들의 죽음을 최대한 예를 갖춰 마쳐야 할 의무는 잊었을까 하고



한국대표팀이 선제골로 앞서가자 식당에 모인 나의 타인들은 점점 진진혼입塵塵混入의 영혼 속으로 끌고 내려가 지옥의 입구에 죄상이 속속히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보고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고



나도 그랬다

누님의 따뜻한 유골을 앞세우고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나모 아따 시치남 삼먁 삼못다 구치남’을 세 번이나 외며 금색여래 아미타불께 귀의하였으니

이민 후 한 번도 소식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그녀가 살던 솟을대문 집은 점점 퇴색해 가고 마침내는 문을 걸어 잠겨 있는 것을 대전에 내려올 때마다 들리는 나의 성지가 되었으니



그때야 비로소 50여 년의 세월을 지나 반대로 돌려 생각하는 반상反想에 이르게 되었다는

그랬을까, 그녀를 마음에 둔 것이 정념情念이었고 감정에 따라 생기는 생각이라면

이성만으로는 어떤 행동도 어떤 욕구도 일이나 사건 등을 끌어 일으키는 야기惹起는 없으니 이는 또 어떠한가. 이성은 우리 행동의 동기일 수 없고 욕구를 막을 수 없으니

흄의 인성론 해석이 아니더라도 이해는 충분할 터



이렇듯 정념과 이성의 충돌은 엄밀하지도 않고

더구나 철학적이지도 않으며

어떤 정염에도 상반되지 않으니 홀가분하였으니



아마 세종시의 학인이 들었다면 영혼은 조화, 질서 잡힌 영혼이 가장 좋다고

몇 번이고 말했냐고 충고하였을 터

그러나 이도 모두 지나갔다.



문득 학인은 내게

인간은 신 없이도 스스로와 세계에 대한 진리를

굳세게 찾을 수 있나니 하며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었다.


11
이제 나의 존재의 근원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누구나 나의 근원은 나는 누구의 자식이며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일반적 해답에서 찾지 아니한가.



나는 의외의 기회로 향순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서울에 전학을 오고서도 대전의 우리 집은 비어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어머니는 전주이씨 집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효령대군파 26대손의 큰딸이었고 내 아버님은 이 집안의 큰 사위였다. 외조부 돌아가시고



큰 외숙부 도박을 하였다거나 아니면 쌀장사를 하다가 큰 실패를 보았다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살던 대흥동 집에 살고 계셨다.

그 이후 몇 년을 지난 뒤에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니 그렇다



누님은 전학문제로 대전여중을 다니고 있었으니

다행인 것은 그런 연유로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

영어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워싱톤 어디의 주소를 보았다는 것이

편지를 주고받은 내 누님이 그렇게 훌륭하게 보였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는 것이

이상화를 불러내어 읊조린다

나의 아씨, 향순이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오 나의 프리마돈나여

그대와 나는 하얀 천에 싸인 서로의 육신 옆에

밤이 새도록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돈나는 소리를 지르며

지지배배 울어대던 새들의 합창을 듣고서야

나의 뺨과 머리를 어루만지며 행복한 엷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혹시나 있을 서로의, 아니 나의 상처를

아니 인간 본성에 깊이 감춰진 욕망을 어루만져 주듯이



나는 요사이 꿈의 천국에 산다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는 꿈의 천지에서 산다

억지로 애를 써서 꿈의 끝자락을 잡으려 하지만

그녀는 모른 척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왜 그럴까, 그녀는.



12
어쩔 수 없었다

피그말리온의 생생한 전설을 각색하여 나의 꿈속의 이야기 끄트머리에 겨우 연결하는 수밖에

욕망의 코트를 걸친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가슴을 어깨를 부여잡고 거칠게 입술을 찾자

조금씩 부드러워지며 히메투스의 왁스가 녹는다

천천히 심장이 뛴다

손목에 맥박이 뛴다.



그때

바로 그때

아, 하고 가늘고 긴 얇은 성조가 F#5까지 치고 마음껏 올라간 알다가도 모를 그녀

대체 이건 또 뭔가

뜬금없이 배음이 없는 단진동의 사인파라니

무대에 선 그녀가 음의 스펙트럼을 무시하여 질러대다니



이젠 춤에 집중해야 한다

무대 감독에게 신호를 보냈으니 곧 무대의 조명이 꺼질 것이고

바그너 발퀴레의 1막처럼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노로마 중의 아리아 정결한 여신을 마리아 칼라스가 나오던이

다시 패티김이 이별과 함께 그녀가 스치듯 무대를 지난다

베니스 산타루치아의 그 배처럼

신 시메오네 피콜로 성당의 세 개의 제단에 놓인 붉은 장미꽃다발처럼

스칼치다리의 하얀 드레스 입은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무대는 미친 듯이 돌아간다

아만베니스Aman Venice의 춤추는 집시의 여인처럼



이젠 흐름에 맡겨야 한다

칼라스가 아니어도 패티김이 아니어도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가 아니어도

Casta Diva의 순결한 여신이여 당신은 은빛으로 물들이고

신성하고 오래된 나무들은 당신과 나의 사랑을 닮았으니

이제 신성한 숲에서 세속적인 사랑을 정결케 하소서



하지만 그대여

예전의 당신으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큰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팔 수 있음이라

아, 돌아오라 예전의 그대처럼



천둥 치는 내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거든.


13
대전고를 나와서 중동의 건설 붐과 함께 사라졌다 홀연히 나타난 김선배

아니 경빈형을 만났고 인천에 산다고 했으니

아버지가 신의주 출신이고 대전에 살 때 내 부친과 절친이었으니

나도 그 아들인 경빈형과 절친이었으니

온 식구가 그렇게 가까웠으니 그렇게 꿈에 나타날 수 있었으니

내가 그 무대에 초대될 수 있었으니 바야흐로 그렇게

세월이 살 같이 십여 년 흐른 뒤

내가 음악 좋아하는 줄 알고 선물한 녹음테이프

차이콥스키의 비창은 히트였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지휘에 레닌드라드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이른바 4. 5. 6.번의 후기 교향곡 1960년 녹음이었으니 그날 저녁 꿈에

그녀가 나타났다, 영락없이

그녀도 비창을 사랑한 것이다, 주저할 것도 없이 바로 시작되었다.



티켓 구입한 지 가 한 달이 지났고

레닌그라드 아니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에

매일같이 나타나 눈도장을 찍었으나 그 흔한 개근상도 없었으니

다만 나는 백조의 호수를 겨우 관람하고 예르미타시 미술관도 서너 달은 지랄을 떨며 보고 난 뒤였으니 그야말로 느긋하게 범이 병아리 한 마리 보듯 봄 처녀가 쑥을 캐듯 느긋하게

한 달여나 남은 공연을 즐겼으니 말해 무엇하랴만



큐시트Cue Sheet 확인하고

시작 전 무전기로 체크, 무대 진행자 오케이 싸인

SET OUT (OFF 작업등 제외)하며

행인 1, 2, 3.

조명인

음향인

반다 관악기

레치타티보

디베르티스망 오케이 싸인

바로 뒤따라 오는 메시지 잊어선 안 될 퇴근주소 자막처럼 떠오른다

5-7 Rimsky-Korsakov Avenue, 190068 Saint

Petersburg, Sankt-Peterburg, Russia

O Kay



레딧 고우!

내 눈이 불을 켠다

하얀 호랑이의 눈이 타오른다.

14
백호는 흰 호랑이

흰 까치가 무리에서 쫓겨나듯 백호도 방외자 된 지 꽤 오래다

그건 순전히 그녀 때문이다

세계를 떠돌며 디아스포라의 노래를 불러대던 방외지사方外智士의 끄트머리

한 번도 세상은 그를 향해 문을 열지 않았으니 변덕도 부릴만 하다

그리하여 장면이 바뀌어 파리로 날아간다, 바로

팔레가르니에Palais Garnier



팔은 부드럽게

어깨는 낮추고

음악에 맞춰

발레의 규칙을 지키고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나



규율을 지키게

강사의 말에 귀 기울이게

정신 차리고 어깨 힘 빼고

자, 그만 멈추고



잘 들으시게 신체의 자유는 규율을 통해서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춤은 말하지 않네

보여주기 위해선 힘을 어깨에서 빼어야 하네

자, 다시 기초부터 시작하네



인사하고

고개를 너무 많이 숙이지 말고

드미 플리에Demi Plie 두 번

그랑 플리에Grand Plie 한 번으로 시작하고

자, 준비 피아노 주세요



등은 꼿꼿하게

5번 포지션 바뜨망 제때Battement Jete’ 바뜨망 탄듀Tendu

스텝에도 어깨에도 팔과 손끝도 힘 빼고 부드럽게



자, 그만 멈추고

이 세상엔 억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

더구나 스텝은 서두르거나 애쓰는 기색없이 이어지며 손과 어깨와 시선과 어울려야 하지

세상의 이치가 모두 그러하네

스텝이 조화롭지 않으면 어깨와 손이 그것을 따라가듯이

모든 것은 그렇게 연결되네

마치 아름다움은 추함에서 만들어지는 미추美醜처럼



멋진 벨벳 커튼과 빛나듯 쏟아지는 빗방울을 닮은 마린스키극장의 샹들리에처럼

샤넬의 매혹적인 향기와

그녀에게 환호하고 열망하는 사람들

제격에 맞는 피아노 소리

내가 허리를 부드럽게 안아주네

기술도 목표가 아니고 수단이라는 것을

향순은 그때 아리따운 교성嬌聲 지르고

15
자, 다시 시작하네

팔은 부드럽게 어깨는 낮추고

음악에 맞춰 발레의 규칙을 지키고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

향순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믿음



기억해 두게

이야기를 가지려면

그녀의 마음을 가지려면

자네가 바로 서야 한다는 확신에 대한

믿음



자네가 바로 서려면 스텝이 꼬이지 않도록

서두르거나 애쓰지 말게

그저 구름에 달 가듯 부드럽고 또 부드러우면

어깨와 손이 그것을 따라가고 부드럽게 스윽 다가서지

혹시 그녀는 날 기억할까 하는 믿음



눈 내린 숲속에 자작나무처럼

눈 내리는 벌판에 하늘을 나는 학처럼

이야기를 눈으로 말하네

우리 인간은 이야기의 꿈이 있지

이야기 하나 둘 들고 모두 세상을 여행하지 하는 믿음



여보게 친구 이야기할 때

감정을 실어 말하게 더욱이

가끔 눈 내리는 벌판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묻는 길을 알려 줄 때

하얀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옛날이야기 하는 속으로

그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는 뽀드득뽀드득하는 울림



하얀 자작나무가 점잖게 숨 쉬는 곳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

우린 그렇게 다시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우리 아이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가야만 하는 이야기의 동굴에서 나오는 믿음



건배 하나, 다시 건배 둘

감정을 쏟아부어 건배 셋

이렇게 더도 덜도 없는 확신의 삼세번

미루고 외면된 그녀

내면의 진한 슬픔



팔레가르니에Palais Garnier 무대 조명 아웃

모든 음향 아웃

모든 시절 인연 아웃

그녀도 아웃 아웃 아웃

나도 이제 나의 자유로움으로.

16
이 글의 멋진 화룡점정을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생의 골목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였으니 마침내 실타래처럼 얽힌 추억-회상의 한가운데서 시 한 편이 탄생하였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정민준 기자 입니다. html 링크 걸기 CTN 네이버 블로그 CTN 방송 CTN 페이스북 CTN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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