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인사. 말 없는 미소[주종순/ 수필가] 정민준 기자 jil3679@daum.net

2021년 03월 15일(월) 23:00

▲[주종순/ 수필가]

마지막인사. 말 없는 미소


연속 며칠 비가 오느라 날씨가 칙칙했다. 그날 아침 비가 오기 때문인지 이불에서 일어나기 싫어 뒤치락거리다가 번뜩 어제 어묵 사온 걸 잊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어묵, 오늘도 먹는 즐거움의 선택은 어묵이었다. 유독 좋아하다보니 언제 어디서라도 갓 튀겨 포장된 것을 사다가 직원들도 나눠주면서 먹었었다. 나의 매장은 한창 사업을 키워 오던 터라 여러 군데에 많은 직원들이 있었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빨리 일어나서 움직이자‘하는 생각에 정신이 퍼쩍들었다.

나이 어린 직원들은 오늘도 여전히 또 몇 명이나 못 나오고, 늦게 나오고, 안 나오고, 무단 결근 할 것인지, 날씨 탓에 눈을 뜨면서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직원들 연령이 다들 생활력이 없는 나이다 보니 365일 단, 하루도 걱정 없이 돈 벌고 산 일이 없다. 부랴부랴 어묵을 볶아 한 그릇 싸 가지고 매장 도착했을 때도 어묵은 따스했다.

그 당시 나는 금 장사를 10평 크기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고, 정면 마주 보이는 곳인 나의 매장에서는 다른 품목 숙녀의류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서둘러 나왔는데도 성실한 미영이는 이미 와서 의류매장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기분도 좋았고 직원인 미영이가 대견했다. 그래서 머릿속 아득하고 노곤한 잠을 깨우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미영이의 청소하는 모습을 고맙게 바라보고 있는데, 미영인 어느새 청소를 마치고 옷이 걸려 있는 행가에 기대서 나를 응시하다가 눈길을 돌리고 또 응시하다가 눈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느낌이 사장인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나는 아침에 볶은 어묵을 들고 미영에게 가서, “따스할 때 먹으라.”고 자취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아침을 굶고 점심을 일찍 당겨 먹기에 특별히 신경 써서 가져다 준 것이다. 미영이는 말없이 받아서 의자에 앉아 먹더니 금세 빈 그릇을 가져와서 내밀기에 나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맞 있지? 무슨 말 내게 하고 싶은 말 있어?" 미영이는 슬쩍 미소를 짓고 아무 말이 없다. 비가 계속 오면 직원들의 분위기도 조금 쳐지기 때문에 그런 줄도 모른다. 미영이는 유독 목소리도 작고, 깨끗한 피부에 얌전하고 정숙한 타입이라, 출퇴근만 잘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직원이었다.

"혹시 너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니?"물어보니 그냥 "아니요" 라고 대답은 하는데 표정으로보아 할 말이 있는 것도 같고, 매장으로 가더니 또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서 나에게 몇 번 들켰다.

그런 상태로 매일 비슷하게 돌아가는 하루가 또 지나간다. 장사는 손님과 상대하다보면 하루가 가고 종일 그곳에 있다 해도 매상 관리와 디스플레이로 바쁜 하루가 간다. 상공인이라면 매일 기다려지는 그 퇴근시간에 미영이가 나에게 오더니

"오늘아침 사장님이 집에서 해다 준 음식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고 아주 다소곳이 다른 날보다 더 정중하게 퇴근 인사를 하고 갔다. 난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 직원들에게 어묵을 또 나눠줄 생각으로 잔뜩 들고 출근했는데 미영이가 출근을 안 했다. 이상했다. 전날에도 아무 일 없이 인사 잘하고 갔는데 웬일인지 너무 궁금해서 소통이 잘 되는 직원을 불러 왕복 택시비 주고 꼭 데리고 오라고 내보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데리러 간 직원에게 전화가 왔는데 미영이 방문 앞에서 아무리 불러도 안 나와 주인아주머니와 문을 따고 들어가니 기가 막힌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 119에게 전화 했지만 나중 부검결과 이미 10시간도 더 지난 후라고, 난 그 소식에 소름과 무서움이 머리도 쭈뼛 서고 어떻게 해도 진정이 안 되고 전날을 생각해보니 내가 눈치가 너무 느렸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었다.

어찌해야 되나? 그렇게도 곱고 정숙한 애가 떠나갔으니 내가 좀 더 눈치가 빨라서 상담만 해주었다면 살아 있을 수도하는 생각이 지금도 또 생각해도 내가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영에 대한 죄스러움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랑 같이 앉아 먹었다면 혹시 고민을 말 할 수도 있었을텐데. 조금만 더 깊은 관심만 보여주었다면 그렇게 안 됐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늘의 뜻은 사람의 의지로 꺽지 못한다는 말을 믿어야 되는 건지, 많은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오늘날까지도 가끔씩 아쉬움에 시달린다. 미영아! 그래도 고맙다! 내가 성의껏 해서 너에게 한번만이라도 맛있게 먹여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가슴이 덜 쓰리다.

뒤늦게 미영이의 일기장이 발견되었는데, 늙으신 부모님이 생활고로 이혼하고 아버지는 병들어 있고, 엄마는 생활능력이 없어 외동 딸 미영이를 데리고 살 수 없어 다른 남자와 동거한다는 미영이의 괴로워하는 일기 내용이었다.

미영이는 아버지가 불쌍해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참으로 딱한 가정환경이 애를 가엾게 만들었으니 다 어른들 탓이다. 그 일이 있고서 금 매장에서 직접 마주 보이는 미영이가 근무했던 의류 매장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빛과 소금 5월호” “이혼가정 자녀들의 심리적 상처와 갈등”을 보면 살면서 겪는 일중에 가족의 사별 다음으로 스트레스 순위가 1위인 것은 부모님의 이혼이고, 그로 인해 자녀들에게도 오랜 기간 상처와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앗다. 그만큼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한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 사유가 어떠하든지, 뒤에 남은 자녀들은 분노와 좌절감, 부모가 날 버렸다는 소외감, 부모님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반항심마저 생겨 현실을 부정으로 밖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금전적인 싸움으로 이혼한 가정 자녀들은 학업을 할 나이에도 돈만 있으면 가정을 되찾을까 싶어 본인들의 희망도 팽게치고 현실 속으로 급히 뛰어들고, 그러다 보면 자녀들이 대인형성, 인간관계까지도 사회에 나쁜 영향이 오는 것이다.

미영인 부모님의 이혼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할 부끄러운 가정사로 인해 말없이 미소만 짓던 미영이의 마지막 모습이 크로즈업 되는 이유는 부모님 이혼으로 인해 고민하는 또 다른 내 이웃 친구들 때문일 것이다.

[주종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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