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스스로 지은 호 '사임당' - 리채윤 도서출판 작가교실 대표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
| 2021년 05월 23일(일) 1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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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이름은 '신인선(申仁善)'으로 알려져 있다.
백과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만, 그것은 후세에 붙여진 이름일 뿐, 신사임당 본인 고유의 이름은 아닌듯하다.
율곡은 신사임당의 일대기를 다룬 <어머니 행장>에서 '어머니의 휘(諱)는 모(某)'라고 적었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것이 아니라 호적에 오른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오늘날 같이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했다. 신사임당 같은 뛰어난 여성이 이름조차 없었다니! 놀라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조선시대 여성들의 현실이었다.
신사임당은 평생 4남 3녀를 낳아 길렀는데 가장 빼어난 재주를 지녔던 맏딸 매창 외의 두 딸의 이름이나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매창도 그녀의 당호이지 이름은 아니다. 조선시대 여성 지식인들 중에 중국까지 이름을 떨쳤던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자신의 3가지 통한(痛恨) 중 하나를 여자로 태어난 것이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신사임당은 그런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이름을 드날리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웠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아서 7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신사임당은 그림, 시, 서예 등의 재주가 탁월했고,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도 능했다. 뿐만 아니라 성리학적 소양이 높아서 경전과 고금의 사기, 문집에 두루 통하는 등 넓은 학식을 가졌다.
신사임당은 15살이 되자 스스로 당호(堂號)를 지었다.
신사임당은 왜 스스로 당호를 지었을까?
글 솜씨와 그림 솜씨가 날로 늘어가던 때라서 작품에 낙관을 찍을 호가 필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빼어난 예술가다'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존재증명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가 스스로 이름도 되고 호도 되는 것을 갖고 싶어진 것은 어려서 안견(安堅)의 그림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외할아버지 이사온(李思溫)이 세종 때의 유명한 화가 안견의 화첩을 가져다 어린 신사임당에게 보여준 일이 있었다.
어린 소녀는 그 그림에 감동을 먹고 그 화풍을 따라 그림을 그렸다. 뿐만 아니라 총명한 그녀는 거기에 찍혀 있는 현동자(玄洞子)라는 낙관(落款)을 보아버렸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높은 뜻이 담긴 이름을 하나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뇌리에 역사상 가장 현숙한 부인으로 이름 높은 중국 주나라를 세운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 부인을 떠올랐다.
'태임'은 자녀 교육에 대한 열성과 신념이 대단했던 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태임은 최초로 ‘태교(貽敎)’를 실시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태임 부인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스승 '사(師)' 자와 태임의 '임(任)' 자, 집을 뜻하는 '당(當)' 자를 붙여 '사임당(師任堂)' 이라고 지었다.
사임당이 스스로 지은 당호를 보면 그녀가 자신의 인생 목표를 어디에 두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사(師)'는 본받는다는 뜻이요 ‘임(任)'은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뜻한 것이니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나아가서 '사(師)'는 덕으로써 사람을 깨우치게 하는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스스로 모법이 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15세의 어린 소녀가 당호를 스스로 지었다는 것은 그녀의 당찬 성격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신사임당이 태임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은 데는 공자(孔子)의 영향도 컸다.
공자는 주나라의 창업주 주문왕(周文王)을 깊이 숭상해서 "나는 젊었을 때, 문공(文公)을 꿈에서 뵈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나이 들고 늙어 쇠잔하여 꿈에서 그를 뵈올 수 없게 됐다. 참으로 슬프고 슬프도다. 이렇게 오랫동안 꿈에서 문공을 뵈올 수 없다니!"하면서 한탄할 정도였다.
공자가 그토록 사모하고 숭상 인물 문왕을 가르치고 훈계교도하여 길러낸 어머니가 태임(太任)이었다. 태임과 문왕의 이야기는 시경(詩經)에도 나온다.
사제思齊 - 거룩한 분 생각하며
거룩하신 태임
문왕의 어머님
시어머니 태강께 효도하시어
왕실의 부인 되셨다
태사께서 아름다운 소리 이어받으시어
많은 자손을 낳으셨다
선왕들께 순종하고
신령들에게 원망함이 없었다
신령은 슬퍼함이 없으시고
자신의 아내에겐 법이 되고 형제자매에 이르시고
여러 나라를 다스리시다
부드러운 모습으로 궁에 계시며 공경하는 모습으로 사당에 계시며
나타나지 않아도 또 임하신 듯
싫어하는 일 없이 백성을 보듯 하시었다
큰 어려움을 끊지 못하였으나 밝고 위대하여 하자가 없으시니 들리지 아니하여도 법으로 하고 간언하지 아니하여도 받아들이셨다, 어른들은 덕 있게 되고
아이들은 이루는 것 있으니 문왕께서는 싫어하심 없으시고 선비들을 명예롭게 하시었다‘
- 『시경』, 「대아大雅」
사임당은 군자의 풍모를 갖춘 태임을 본받아 살고자 했을 것이다. 신사임당이 당호를 지으면서 노렸던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현모양처가 아니라 '군자의 풍모'였다.
그녀가 흠모했던 태임은 문왕이라는 성군을 낳은 훌륭한 어머니이기 이전에 모든 것을 두루 갖춘 군자의 풍모를 지녔던 인간상이었다.
실제로 율곡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시인 송강 정철의 현손인 정호(鄭澔, 1648~1736)는 사임당을 '여자 중의 군자'로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옛날 성현들은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도덕이 온전하고 재주가 갖추어진 사람을 일컬어 군자라 했다.
그러나 이 말은 남자에게는 해당되나 부인에게는 상관이 없는 말이다. 남들은 여자란 다만 도덕은 말할 수 있어도 재주는 말할 것이 못 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여자라도 덕이 이미 온전히 갖추어졌고, 재주도 통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면 어찌 여자라 하여 군자라 일컫지 못하겠는가. 사임당은 여자 중의 군자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정호, 「사임당화첩발師任堂畵帖跋』, 『장암집丈巖集』
막상 당호를 짓고도 신사임당은 그림에 그 낙관을 별로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에게 그것을 보이기가 아직은 쑥스럽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훗날 사임당의 그림을 모방해서 병풍도 만들고 족자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사임당이란 글자가 어떤 것인지를 잘 잘 모르고 사(師)를 사(思)로도 쓰고 임(任)을 임(姙)으로도 쓰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신사임당이 당호를 지은 것은 누구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증명의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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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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