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2월 혁명으로 니꼴라이 2세 퇴위 - 로마노프 왕조와 제정 러시아 종말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
2024년 12월 09일(월) 1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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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연해주 당국이 1911년 콜레라 창궐을 구실로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의 아무르만 산기슭에 조성한 한인들의 주거지가 신한촌이었다.
신한촌은 단순한 한인 집성촌이 아니었다. 권업회와 한민학교, 고려극장, 선봉신문사 등 항일운동단체들이 만들어졌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 문화 보존을 위한 노력이 1937년 강제이주 이전까지 활발한 한인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국이 되었다. 그 결과로 러시아는 권업회를 강력히 탄압하여 그 활동이 위축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영사관에서는 이동휘, 이상설, 이종호, 유동열, 이강등 중요인사들을 연해주에서 추방할 것을 요구하고 러시아 당국도 권업회를 해체시킴으로써 1914년 8월 권업회는 해체시켰다.
한편 권업회와 신한촌 민회에서는 이에 맞서 신한촌 내 일본인의 상점을 철수케 하고 일본인의 출입을 금지했으며 만약 출입하는 일본인이 발견되면 한인 청년들이 사정없이 해를 가했다. 이러한 한인의 강렬한 의기의 소식이 만주로, 미주로, 본국으로 전해지면서 온 민족의 독립의지는 더욱 결연해졌다.
그러나 1915년 8월 일본은 최재형 등 한인지도자 28명의 추방을 러시아에 요청하였다. 일본은 최재형이 권업회 창립자의 한사람으로 한국의 독립당설을 위해 15,000루블의 기금을 모았다는 혐의를 씌웠다. 최재형은 1915년 11월 3일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군을 후원하기 위한 휼병금 모금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휼병회 발기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1916년 8월 러일신협약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는 한인들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주요 한인지도자들이 가택 수색을 당했고 최재형은 포박을 당해 니콜스크 우수리스크 군 소재지에 감금되었다. 그곳에는 최재형의 첫째 부인의 소생인 장녀가 살고 있었는데 장녀의 남편 즉 최재형의 사위인 김 야코프 안드레예위츠가 있었다. 그는 한때 최재형에게서 글을 배운 사람으로 교편을 잡으면서 군 상류층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최재형은 사위의 도움으로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
한편 러시아는 1917년 2월 23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바로 다음 날엔 학생들도 참가해 ‘전쟁 반대’ ‘전제 타도’를 외쳤다. 이틀 뒤엔 러시아 전 도시로 파업이 확대되었다. 사흘 째 되는 날, 군경이 시위대에 사격을 개시했지만 날이 갈수록 시위대는 점점 늘어났다. 6일 후 시위대의 승리로 수도의 병사들은 소비에트에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 한 달도 못돼 수비대는 소비에트에 복종했고, 농민들도 뒤따라 농민위원회와 소비에트를 조직했다. 한편 소비에트 위원회는 전선에 나가 있는 니꼴라이 2세에게 대표단을 파견했다. 차르 니꼴라이 2세는 수도가 위기에 빠진 줄 알면서도 철도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도에 접근할 수가 없었다. 소비에트 위원회의 대표는 니꼴라이 2세에게 요구해 황태자에게 차르의 제위를 물려주고 퇴위하라고 설득했다. 전선의 사령관들도 소비에트 위원회의 요구를 지지했다.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차르 니꼴라이 2세는 3월 2일에 동생 미하일 대공에게 차르를 양위한다는 서류에 서명했다. 다음 날 미하일은 사태를 파악하고 차르의 계승을 거부했다.
3월 4일 니콜라이 2세의 퇴위 칙서와, 차르의 동생인 미하일의 차르 제위 거부 칙서가 동시에 공표됐다. 이로써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와 제정 러시아는 종말을 고했다.
이때 최재형 등 한인들은 러시아 한인사회를 결집하려고 노력했다. 1917년 6월 4일, 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대표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한인들은 러시아 임시정부를 지지하기로 결정하고 임시정부에 축전을 보냈다. 또한 러시아 임시정부가 승리할 때까지 전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을 지지했다. 이로써 항일운동보다는 러시아 내에서 귀화 한인들의 자치와 권리신장에 적극 노력하게 되었다. 이에 항일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비귀화 한인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그 결과로 우수리스크에 귀화환인만으로 고려족중앙총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고려족중앙총회에서는 연해주 지역 4개 의석을 두고 입후보를 한 원동의 9개 당파 가운데 연해주 촌민회 지지운동을 전개하여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재형은 연해주 촌민회 지지조건으로 ❶시베리아 정부 독립지지 ❷시베리아 독립시 선거에 한족대표 두사람 참여 ❸5년 이상 거주 한 한인에 대해 국적취득을 불문하고 토지소유권 인정 등을 내세웠다.
참고서적: 박환 저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 저 <독립운동가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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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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