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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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인연
  • 입력 : 2023. 01.01(일) 00:49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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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동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인연(因緣)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일의 내력 또는 이유라 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인연설(因緣說)로 풀고 있다.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주로 불교에서 이 설을 주장한다. 인은 그 자체가 결과의 근본적 요인이며, 연은 인이 어떤 결과가 되도록 하는 여건·관계 ·환경·노력 등의 원조적 요인이다. 예를 들면, 쌀과 보리는 그 종자를 인으로 하고, 토양·일기·비료·경작 등을 연으로 한 결과이다. 이러한 인·연·과(果) 가운데 과를 설명함에 있어 인을 중시하는 주장이 인연설이고, 연을 중시한 입장이 연기설(緣起說)이다. 여하튼 사람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특별한 인연, 특별한 순간을 꿈꾸지만 사실 이미 그런 기회는 우리 삶에 수도 없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후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금생의 어떤 인물로 태어났다는 인과와 윤회사상의 일부가 된 인연은 『삼국유사』에 두루 실려 있다. 예를 들어 제5권의 제9 「효선(孝善)」에 실린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에서는 불국사의 창건주로 알려진 김대성이 전생에 무밭 세 개를 보시한 공덕으로 후생에 재상집에 태어난 인연이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환생과 무관한 경우에도 이 인연은 한국인의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구비문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공양미 3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뛰어들었으나 결국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심청전』에서처럼 일반 민중들의 도덕심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인연이 있다. 인연이 없다.”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쓸 정도로 한국어가 되었다.

조선 시대의 인연을 살펴보면 허준은 1545년생인 이순신보다는 6세, 1542년생인 유성룡보다는 3세 연상이었다. 이순신과 유성룡이 지금의 서울 중구, 허준은 양천구 출신이니 한강을 사이에 두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던 셈이다. 1571년 내의원 관직을 얻은 허준은 1590년 왕자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으로 정 3품의 품계를 받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임금의 의주 피란길에 동행했다. 그러니까 유성룡과 허준은 전란 동안 함께 임금을 보필했던 사이였다. 좋은 인연이었다.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게 되는데, 15살이 된 황상을 만나게 된다. 황상은 정약용 선생이 특별히 아끼고 사랑한 제자였다. 이는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견서여시(見書與詩)’에 보면 “황상을 열흘 만에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여러 제자 중에 학문, 인품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아끼는 제자”라고 적혀 있다. 이어 “부지런함이란 무엇이냐”는 황상의 질문에 다산은 “삼근계(三勤戒), 즉 세 가지가 부지런하면 된다. 학문을 좀 한다는 자들에게 세 가지의 병통(문제)이 있는데 너에게는 해당하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라고 답했다.

아울러 다산의 장남인 정학연도 황상에게 서찰을 보내는 데 ‘황상과 그의 자식, 그리고 우리 형제 세 집안은 죽을 때까지 변치 말자’는 내용의 정황계첩(丁黃契帖)을 지어 두 집안의 우정을 다짐하기도 했다.

연안 박지원과 제자들의 이야기도 유명하다. 조선 정조 때 인물인 박지원은 저잣거리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교류하는 인물로 유명했다. 실학자인 박지원은 당시 백탑(오늘날 탑골공원 부근)을 중심으로 지식인의 모임을 했는데, 바로 ‘백탑파(白塔派)’였다. 여기에는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백동수 등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스승인 박지원 선생을 모시고 꾸준한 나눔을 했다.

그런가 하면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은 고산 윤선도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그는 주옥같은 시편을 남긴 조선 최고의 문인이기도 하며, 학식이 매우 뛰어난 선비였다. 특히 인조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의 스승이었다.

조선 중기 학자인 서경덕은 독학으로 학문을 익힌 인물이다. 특히 그가 역사에서 눈에 띄는 다른 이유는 절세미인 황진이와 얽힌 사연 때문이다. 당시 벽계수와 지족선사를 모두 무너뜨린 황진이는 송도에서 이름난 학자인 서경덕을 만나기 위해 성거산에 찾아들었다. 하지만 서경덕은 황진이의 유혹에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안중근 한국인이라면 아무나 붙잡고 이 사람에 대해 질문하면 주저 없이 답할 것이다.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라고. 1907년 7월 20일, 이토히로부미가 헤이그 밀사 파견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폐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해산 군인들은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이 모습을 직접 본 안중근은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판단하여 일전에 동포가 많아 그곳에서 의병투쟁을 벌이라는 권유를 들은 적이 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망명한다. 이곳에서 엄인섭, 김기룡과 의형제를 맺고, 의병을 모아 재러시아 한인사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최재형의 집에 데려갔다. 그리고 미국에서 스티븐슨을 권총으로 쏘고 변호사의 권유로 블라디보스토크로 피신한 전명훈도 만나는 인연도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기막힌 인연, 한국의 쉰들러라 불리는 현봉학이다. 그는 세브란스병원의 의사이자 교수이다.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 작전에서 북한을 탈출하고 싶었던 피난민들을 아몬드 미 10 군단장에게 탑승을 요청하여 9만 8천여 명을 미군함에 태워 살려낸 한국의 쉰들러로 불린다. 통역관으로 참전해 인연이 되어 아몬드장군을 만났지만 적군의 스파이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봉학교수의 기도가 통하여 10만 명의 피난민을 철수시킬 수 있었다.

인연이 있다면 천 리 밖에서도 만난다 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수필 ‘인연’을 썼던 피천득이 한 말이다. 나도 뒤돌아보며 한해의 인연을 살펴본다. 그리고 함부로 읽고 버렸던 나와 책의 인연들도 돌아본다. 왜 이리 세월은 가도 가도 부끄러움만 남을까. 눈보라 치며 분분한 허공을 바라보는 오늘이다. 인연의 아름다움도 못 보면서.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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