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아, 소피스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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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아, 소피스트여
  • 입력 : 2023. 03.26(일) 11:11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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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철학은 '본질'을 고민하는 학문이다. 우리는 통찰력과 비판적 시각을 키우는 철학을 영어로 philosophy라 한다. 이 philosophy라는 말은 사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phil'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가 결합 된 말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란 말이다. 우리가 흔히 '서양철학'을 지칭하는 philosophy란 지혜를 갈망했던 고대 그리스인들로부터 시작된 언어라 말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지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무엇이 그들에게서 세기를 관통하는 사상과 윤리를 출발하게 하였을까?. 여러 가지 배경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자연철학에서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의 이행이 가장 큰 동력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는 이오니아학파를 중심으로 한 '자연철학자'들의 시대였다. 자연철학자 중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학자는 '탈레스'로, 만물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 라는 금언이 그의 입에서 나다. 그들은 ‘아르케(arch, 세계의 원리와 근본)’라고 하는 만물의 근원을 찾고자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노력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보다는 ‘과학’에 가까운 것이었다. 세상에 대한 그들의 합리적인 접근은 당시 신화 중심 사회였던 그리스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지만, 탐구의 대상을 자연에만 한정하였다는 것과, 기술력의 부재로 인해 보편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의 맹주 국가였던 아테네는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으로 알려진 페르시아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시기였다. 여기서 하나의 변곡점이 발생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자연철학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시기였다. 이로써 국가는 부강해지고 시민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황이 되어 아테네는 이제 더는 자연이 아닌 인간의 ‘좋은 삶’에 눈을 돌릴 충분한 동력을 얻게 되었다. 바로 그때 자신을 지혜로운 지자(知者)로 칭하며 나타난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을 바로 소피스트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혜성처럼 나타난 소피스트들은 이제 더는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의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했을 뿐이다. 그랬던 또 하나의 배경은, 그 당시 아테네의 다양한 해상무역이 사람들에게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인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타문화와 접촉이 빈번해지고, 문화마다 서로 다른 관습과 규범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공동체마다 제각각의 가치와 양식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소피스트들은 매우 파격적인 사고의 전환을 시작한다. 즉 인간의 삶에,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인 모습은 없다’나 ‘진리는 없고 의견만 존재한다.’ 등이다. 그러니까 소피스트들은 인간의 감각 경험으로는 보편적 진리를 알 수 없으며,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의 주장이나 가치도 객관적일 수 없으며, 그저 하나의 의견 또는 신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으니, 이러한 소피스트들의 인식론을 ‘상대주의적 인식론’이라고 한다. 마치 누구에게는 얼음이 차갑다고 느껴지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시원하고 좋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누구도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거나,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로써 소피스트들은 인간의 감각 경험을 넘어서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감각경험을 통한 귀납적 방법으로 ‘좋은 삶’과 '덕(德)'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다. 살펴보면 인간의 감각경험이 개별적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그들이 상대주의적 인식론에 빠진 것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의 사고(思考)는 자연스럽게 도덕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한 그들의 윤리적 관점을 '윤리적 상대주의'로 불렀다.

그렇다면, 이런 소피스트들의 '좋은 삶', 즉 '덕'이란 무엇이었을까? 더구나 보편적 진리가 없다고 믿는 그들에게 ‘덕’이란 결국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의 성공’이라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귀결되었다. 즉, 자신의 안위를 돌보고, 자신에게 물질적,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행위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그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 사회적 성공이란 정치적 성공을 의미하였고, 소피스트들은 그들이 말하는 ‘덕’, 즉 ‘정치적 권력 획득’을 보장하는 기술인 수사학, 웅변술 등을 가르쳤다. 일각에서는 그들이 물질적 재화가 아닌 지식을 돈을 받고 판매한 최초의 사람들이 된 것이다. 철학은 인간의 자유와 사랑이 지고한 가치이며, 인간에게는 삶을 결정할 힘을 키우는 학문이다. 남을 지배하지도 남에게 지배받지도 않는 자유인의 정신, '새로운 마주침‘을 통해 창조와 기쁨의 연대를 이뤄낸 소피스트여, 그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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