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프랑스 요리는 문화교류의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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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프랑스 요리는 문화교류의 발명품
  • 입력 : 2023. 04.26(수) 12:45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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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요리는 인간만이 누리는 문화이다.

한 나라의 식생활과 요리는 풍토와 역사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동해에서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여 어장(漁場)이 발달하였고, 섬이 많고 수심이 낮은 남해 · 서해에서 해산물이 많이 난다. 또 한반도의 북부는 한란 차가 큰 대륙성 아열대와 한대기후지만, 남부는 장마가 있고 벼농사에 적합한 온대기후이므로 양질의 쌀이 생산된다. 곡물 · 수산물 요리와 함께 육류 요리가 풍부한 것은 대륙의 식생활에서 영향을 받았다. 육식은 삼국시대 이전에도 있었고,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의 전래와 보급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 중기에 걸쳐 정진식(精進食)이 권장되어 식생활에서 육류조리법이 쇠퇴하였다. 그 뒤 고려시대에 북방의 육식 민족인 거란의 침입과 100년이 넘는 원(元)의 지배 아래 육식이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의 육류 요리로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요리 역사이다.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오늘의 만찬에 크랩(게살) 케이크와 소갈비찜 등이 올라올 예정이라는 뉴스가 세계로 향하는 날개를 달았다. 이렇게 미국 요리에 한국 식재료를 곁들인 것이 미국에 소개되고 때마침 세계에 부는 한류의 열풍이 우리의 요리는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도 한국 음식 한가지쯤 식탁에 올려야 실력 있는 요리사로 인정받을 것이고, 인류 요리 역사는 이렇게 한 장 한 장 쓰였다.

4월 24일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는 백악관에서 국빈만찬 사전 설명회를 열고 윤 대통령 부부에게 대접할 음식과 만찬장 디자인 콘셉트 등을 언론에 소개했다. 질 바이든 여사의 설명으로 언론에 소개된 소갈비찜과 된장 캐러멜 더해 게살 케이크 등이 영상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소개된 바로는 첫 코스는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와 차가운 호박 수프다. 게살을 발라 구운 크랩 케이크에는 ‘고추장 비네그레트’를 곁들인 양배추와 콜라비, 펜넬, 오이샐러드가 함께 오른다. 호박 수프는 절인 딸기와 들깨 기름으로 장식했다. 메인 코스는 잣을 곁들인 소갈빗살 찜이 나온다. 강낭콩 그리츠(말려 간 뒤 삶아 버터·우유와 섞어낸 요리), 수수를 바른 당근 등으로 구성된다. 디저트는 레몬 바 아이스크림과 신선한 베리류, 민트 생강 쿠키 크럼블, 된장 캐러멜이 곁들여진 바나나 스플릿이 국빈만찬의 요리로 나온다.

세계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의 요리는 프랑스의 요리이다. 맛도 맛이지만 아는 바와 같이 디자인적인 마케팅이 오늘까지 이어온 결과일 것이다. 프랑스에서 비롯한 요리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고급 요리로 명성이 높고, 튀르키예 요리, 중국 요리와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많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과 깊은 연관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프랑스 요리는, 세계적인 명성과 달리 인지도가 비교적 낮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으로 수출된 프랑스 요리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양질의 음식이 격식을 갖추어 제공되는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이라는 고급 요리 위주로 전파됐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이 단기간에 이루어진 한국은 파인 다이닝이 미흡하고, 밑 준비와 요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선호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요리는 대부분 금수저나 먹는 초고급 요리라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 한 밥 먹는 데 무조건 국물이 있어야 하는 한국인의 식성은 아예 물을 안 쓰는 프랑스 요리와는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단순히 유럽 요리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이탈리아 요리는 엄청나게 인기 있는 편이라 10대부터 40대까지 폭넓은 지지를 받는 걸 생각하면 기이하다면 기이한 현상. 탄수화물, 곧 면이나 밥이 없으면 한 끼 먹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국 식문화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서 프랑스식 파인 다이닝 코스요리의 메인이 되는 요리는 역시 스테이크인데, 한국에서는 소고깃값이 워낙에 비싸다 보니 미국산에 선택 등급으로 단가를 아무리 아껴도 가격이 다른 외식 메뉴보다 비싼지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조차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고 파인 다이닝에서 스테이크 포함 풀 코스 디너에 선뜻 가격을 지불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은 것이다.

프랑스 요리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는 16세기 중반 이후인데, 1533년에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오를레앙공작, 즉 후일의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탈리아의 고급 식문화를 들여오면서 프랑스 요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무역으로 부를 축적해서 유럽에서 양반들이 살던 곳이었고, 음식문화 또한 활발한 교류로 매우 발달해 있었다. 특히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에서 시집온 만큼 감각이 남달랐다. 이렇게 발달하기 시작한 프랑스 요리는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고 귀족문화가 발달하면서 더더욱 발전하는데, 17세기 중반 이후로는 식도락에 관심이 많아 직접 요리를 만드는 귀족들도 역사에 다수 등장하고, 대귀족의 요리사들은 지금까지 남아 전해 내려오는 요리책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서로 누가 더 호화로운 요리를 만드느냐 하는 허세들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식재료를 물로 삶는 요리법이 음식의 질을 떨어뜨리고 양을 늘리려 드는 저급한 짓거리라며 사라진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때의 요리 발달은 근본적으로 상류층 요리에 한했기 때문에 각 지방에서 먹는 요리는 여전히 투박한 면이 많았다.

이후 길드(guild)의 해체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왕실 및 귀족들이 처형당하거나 쫓겨나자, 일자리를 잃은 요리사들이 형편에 따라 가판대나 레스토랑 등을 개업하였다. 그래서 상류층이 즐기던 요리를 시민도 먹을 기회가 생겨 미식 문화의 발달에 기여했다. 레스토랑의 개업 자체는 대혁명 이전인 1765년에 최초로 일어난 일이지만 대중적으로 확산하여 기존의 주점 등을 밀어내고 요리계의 중심이 된 것은 대혁명이 계기였다. 유명한 요리사들은 신흥 귀족이나 부르주아들에게 고용되어 요리 문화를 계속해서 발전시켰고, 이들이 경력과 자본을 쌓아 독립하고 직접 레스토랑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고전 요리는 19세기에 앙투안 드 카렘에 의해 극치에 달했고, 또한 외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왕족과 귀족들은 프랑스 요리가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세기에는 러시아 요리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발전했다. 프랑스 요리의 고급화에 박차를 가한 코스요리라는 개념은, 추운 러시아에서 음식이 식지 않도록 음식을 한 번에 한 가지씩 내던 것을 프랑스에 도입하였기 때문이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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