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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선사회는 신분사회였다.
최재형이 러시아 땅에서 자산가로, 행정가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어쨌든 조선의 관점으로 보면 함경도 태생의 노비 출신일 뿐이었다. 당시 러시아 쪽의 보고서에는 이런 관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정치적 망명자 이범윤과 얀치혜의 전 촌장이었던 표트르 최는 지난해에 처음으로 잠시나마 함께 활동했습니다.
군자금과 무기를 구입하고, 빨치산 대원들을 조직했지만 이들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말에는 부대 전체가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었고 지휘자들 간에는 자금 문제로 커다란 반목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여러 가지 원인도 뒤섞여 있습니다.
그 어려가지 원인들 중 반드시 고려할 여지기 있는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의 도덕적 측면과 사회적 위치가 비슷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범윤은 이씨 가문이라는 조선의 귀족인 양반 출신입니다.
이 가문 출신 중에는 현재 조선 왕조를 통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조선의 모든 유명한 귀족 가문은 서로를 친척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근저에는 여전히 씨족사회 원칙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범윤 또한 자신이 왕조의 후예라 생각하고 있으며 외국신문들도 가끔씩 그의 활동 소개하면서 그에게 왕자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로 상해를 통해 일본인들에 의해 퇴위당한 황제 이희 무리들과 교신하고 있으며 한국인들 사이에서 활동적이며 좋은 가문 출신의 명사로 이름을 얻고 있습니다.
반면에 표트르 최는 천생 종의 자식으로서 조선인의 시각으로는 가장 미천한 계급 출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강인한 성격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입니다. 촌장으로 일하는 동안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막대한 재산을 긁어모았고 자신이 다스리는 얀치혜 한인들의 자유를 속박하면서 엄중하게 다루었습니다.
또한 자신을 부유하고 영향력있는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자처하면서 우리 정부로부터 수많은 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사람은 이민족으로 러시아에서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버릇이 나빠진 무원칙의 관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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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자금문제도 있습니다.
군대를 조직하는데 필요한 돈을 어딘가로부터 전달받았고 우리 지역 내에서도 막대한 자금이 모금되어 거의가 최재형의 수중으로 들어가는데 최는 그 돈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무역거래를 하거나 고기를 거래하기도 했으며 노보키예프스크에서도 그런 일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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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윤은 최재형의 추종자인 니꼴라이 이 (이경화)와 엄인섭의 활동을 무분별한 일본인 어부의 사살, 재산의 약탈 등으로 나쁘게 묘사하면서 애국적인 행동이 아니라 강도행위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러시아에서도 의병활동을 하는 최재형을 아주 나쁘게 평가한 보고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지난 해(1908년) 6월에 최는 한인 이주자를 감독하는 책임자로서 투기꾼이나 살인자 강도 등 소위 그의 수하들이라고 불리는 니꼴라이 이와 표트르 엄-이자는 최의 친척입니다.
- 등으로 구성된 몇몇을 자기 책임 부서에 편제시켰습니다.
이 강도 무리는 두만강 상류를 지나다니며 일본인 초소를 습격했고, 세슈로이 마을에서는 일본인 어부를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했으며 그 뒤 온기마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가슈케비치 만에서는 일본인 상인들을 죽이고 강도짓을 했으며 또한 돌아오는 길에 일본인 초소에 대고 총을 쏘아댔습니다.
그 총은 장거리용 일제 탄환이어서 크라스노이 마을의 오두막에도 무차별적으로 날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습격의 결과로 일본인들이 결국 우리 영토 내의 세슈로이 곳곳으로 도망쳐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살해당한 일본인 어부에 대한 일본의 보복과 크라스노이 마을에 대한 사격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영토인 나고르노이 마을로 일본군 소대가 이동해왔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저질러진 최씨 일당의 강도짓과 특히 이런 인물과 함께 일하는 이범윤에 대해서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진정한 애국자들은 약탈을 목적으로 한 이러한 짓들이 결코 애국적인 충동이 아닌 순수한 강도행위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그 괴수인 최는 물론이고 니꼴라이 이나 엄씨도 모두 추악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처럼 러시아도 최재형과 그의 부하들의 행동에 나쁜 비판을 쏟아내며 한인들의 의병활동을 제재했다.
러시아 국적이 아닌 한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 국적을 가진 귀화인들에게도 의병활동을 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었다.
이즈음 최재형과 어릴 때부터 의형제를 맺었던 최봉준도 최재형과 갈등을 겪는다. 최봉준은 최재형과 같은 함경북도 경원 출신인데 상선을 가지고 일본과 무역을 하는 재력가였다.
참고도서 : 박환의 <시베리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 최재형>, 문영숙의 <독립운동가 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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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CTN·교육타임즈·충청탑뉴스·CTN방송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