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서양철학의 요람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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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서양철학의 요람 아카데미
  • 입력 : 2023. 01.30(월) 08:17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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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동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아카데미(academy)는 원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아테네에 연 아카데메이아(그리스어: Ἀκαδημία)에서 유래해, 르네상스 이후 학술단체, 학회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는 학원(學院)의 명칭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걷던 길이 아카데미숲이었기에 학문의 길이 ‘아카데미’라 일컫게 된 것이다. 더구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직접 어떠한 저술이나 일기를 남기지 않았다. 때문에 그의 제자 혹은 지인들, 대표적으로 플라톤이나 크세노폰, 소크라테스에게 비판적인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등이 남긴 저술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나 행적은 대부분이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 근거한 것이라서 아카데미라는 말의 기원은 플라톤이 철학을 가르쳤던 고대 아테네 교외의 올리브 숲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해진 것이다.

그 이후 아카데미는 점차 고등교육기관을 뜻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카데미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1세, 스페인의 이슬람교 칼리프, 샤를마뉴, 알프레드 대왕 등이 있음으로 해서 지식인들 사이로 이 단어는 더욱 확산되었다. 중세가 끝날 무렵에는 이탈리아에서 고전문학과 이탈리아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아카데미가 설립되기 시작했고, 최초의 것은 코시모 데 메디치가 1442년 피렌체에 설립한 플라톤 아카데미이다. 르네상스 이후 가장 유명한 아카데미는 1582년에 설립된 크루스카 아카데미아였다. 프랑스·스위스·네덜란드의 칼뱅주의자들은 대학이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인 18세기까지 자신들의 고등교육기관을 아카데미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도 해양·군사·농업·미술·음악 또는 상업 등과 같은 특수분야의 고등교육기관을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예술·문학 또는 과학 발전을 위해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 많은 학회가 설립되었으며 이들은 국립 아카데미의 지위를 얻었다. 이들 아카데미들은 17, 18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새롭고 비정통적인 발전을 거부하는 경향으로 인해 19세기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후 아테네가 로마 제국의 도시가 되었을 때도 유지가 되었으나, 529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아카데미아에서 가르치는 철학이 이교사상(異敎思想)이라고 지목하여 폐쇄시켰다. 이후 13에서 14세기 사이에 들어서 서유럽의 기존의 대학의 과목 외에 새로운 학문정신과 학문분야의 발전에 발맞추어 새로운 학자의 집단이 형성되면서 귀족이나 왕실의 비호 아래 있던 이들을 아카데미라 부르기 시작했다. 또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15 ~ 16세기에 이르러 융성기를 맞이해 대학(universitas)의 명칭이 일반화될 때까지 중등, 고등 교육기관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으며 그 외에도 과학·예술 단체를 뜻하는 명칭으로 각국의 아카데미 설립은 근대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이후 오늘날 현대의 각 국가는 정부가 직접 아카데미를 설립하거나 보호정책을 써서 과학·문화·예술 등의 아카데미를 육성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등의 국립 기관인 아카데미가 있으며 아이작 뉴턴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학자들도 대개 소속되어 있었다. 마리 퀴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프랑스)의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으며, 한국에서는 과학한림원이 이런 국립아카데미의 위상을 갖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그리고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우리 벗의 최후였습니다, 에케크라테스. 우리는 말할 겁니다. 그는 당시 우리가 겪었던 사람들 중 가장 훌륭하고, 무엇보다도, 가장 현명하며 가장 정의로웠노라고,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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