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희의 문화산책] 슬픈 이별 희망의 첫발, 대한제국의 이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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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문화산책] 슬픈 이별 희망의 첫발, 대한제국의 이민 역사
  • 입력 : 2023. 03.16(목) 10:23
  • 정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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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시인, 소설가 · 극작가 · 사진작가 · 예술인협동조합 ‘이도의 날개’ 창작공동체 대표 · 세종행복도시필하모니오케스트라 대표)
1902년 첫 하와이 이주민이 탑승한 갤릭호가 고국을 떠났다. 그야말로 찬 바람 부는 12월 22일 인천항 8부두에서 배를 타고 미국 하와이로 떠난 첫 공식 이민자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한인들의 이민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하와이의 경우 1905년까지 모두 64차례에 걸쳐 한인 7,215명이 '아메리칸드림'을 향해 떠났고, 이들에게 집 조(대한제국 여권 이름)를 발급해주기 위해 대한제국 내 이민 지원기관 '수민원(綏民院)'이 만들어지는 역사도 있었다.

낯선 땅에서 농장 노동자로 일했던 그들은 팍팍한 삶 속에서도 조국 독립에 대한 꿈을 꺾지 않았다. 1909년 안중근 의사 저격 소식을 들은 한인들이 독립운동 기금을 처음 모집한 이후 1920년까지 하와이에서 모인 독립자금 규모만 300만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정치적인 분열로 20년 가까이 민족단체가 혼란을 겪는 사이에도 이들은 결코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다. 1907년 미국 하와이에서는 한인 민족운동단체 24곳 대표 30명이 닷새간의 릴레이 회의를 거쳐 ‘한인합성협회’를 꾸려진 것이다. 그리고 이 단체를 통하여 해외에서 첫 독립기금이 모여졌다.

1909년 10월 26일에는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했다는 소식이 태평양을 넘어 전해지자 더욱 뜨거워졌다. 하와이 교포들은 안중근 의사의 재판 경비를 위한 의연금을 즉시 모금했고,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무려 1,595명이 성금을 내 2,965달러를 모았을 정도다. 당시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10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이 매달 평균 17달러를 벌던 때인데, 밥값 등 최소 경비를 제외하면 가용 현금은 1∼4달러 수준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이는 호놀룰루 한글 신문 '신한 국보'의 홍종표 주필이 1911년 출간한 '대동 위인 안중근 전'에 기록된 내용이다. 여기에는 안 의사의 생애를 비롯해 의거 과정, 재판 경위 등이 기록되었고 의연금을 낸 하와이 교포들의 명단 전체도 지역·기관별로 나눠 실려 있다. 살펴보면 당시 하와이 전체 한인 인구 4,533명 가운데 무려 35%가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 후 1919년 4월 하와이에서 ‘대한부인구제회’라는 여성 독립운동단체가 결성되었다. 3·1 만세운동 이후 백인숙 선생 등 지역별 부인 대표 41명이 공동대회를 열면서 공식 활동을 시작했고 이들은 민족대표 지원금 등을 마련하고자 독립선언서를 재인쇄한 포스터 3,000장을 판매한 수익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 여성들 가운데엔 예비 남편의 사진만 본 채 고국을 떠나온 이른바 '사진 신부'가 많은 수를 차지해 눈길을 끈다. 그러나 1905년 일제에 의해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이민이 전면 금지되었다. 이제 가족만이 하와이로 건너갈 수 있게 되며 만들어진 풍습으로, 1942년까지 사진 신부로 태평양을 건너간 이들만 1,000명이 넘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내 한인교회를 거점으로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초기 이민자 중 84%가 20대 남자였고, 이들의 결혼 문제가 큰 현안이었다. 그래서 생긴 대안이 사진 교환을 통해 결혼하는 ‘사진 신부’들이었다. 그 후 1924년 미국 이민법에 의해 모든 형태의 한인 이민이 금지되기까지 총 1,000명의 신부가 하와이로 떠난 역사가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과 막역하게 지내며 임시정부를 꾸준히 후원한 독립운동가 심영신 선생은 국권 강탈 이후인 1916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남편과 재혼했다. 하와이에서 구제회 모금 활동을 시작으로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한인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활동은 계속되었다. 여기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있는 힐로라는 곳에 가면 알라라는 공동묘지가 있다. 이곳에 130개 정도의 한인 무덤이 남아 있는데, 거기 비문에, 우리가 보통 ‘아버지’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만 리 땅 이국에서 이 세 글자만 봐도 코끝이 찡한 것은 우리가 한민족이라서 그럴 것이다. 어쩌면 이런 한의 역사가 우리 민족의 힘일지 모른다.
정민준 기자 jil36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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