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김진경

벽사창에 기대어 당신의 글월을 받으니/처음부터 끝까지 흰 종이뿐이옵니다.
/아마도 당신께서 이 몸을 그리워하심이/차라리 말 아니하려는 뜻임을 전하고자 하신 듯하여이다. (중국 곽휘원 아내의 답시)

이 시를 읽고서 부부의 정이 깊구나 싶어서 마음 한켠으로는 닭살이라는 생각과 편지니까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다음의 문장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문장은 내게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고, 때때로 이런 착각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중국의 곽휘원이라는 사람이 멀리 떨어진 아내의 답장을 받았는데 이렇게 구구절절한 사연이 와서 깜짝 놀라 자신의 책상을 뒤적였다. 그런데 정작 의무적인 안부를 묻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자신의 책상에 있었고, 흰종이만 아내에게 보낸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그 남편의 흰 여백을 이렇게 행복한 착각(?)으로 읽어냈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결혼한 아내에게 한 번쯤은 이런 은근한 사랑의 표현을 받을 수 있는 남편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확실한 결론을 내기가 힘들었다.

남편의 실수로 인해 백지로 보낸 편지를 후세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아내의 뛰어난 감수성에 더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또한 화를 내지도 되묻지도 않고 사랑의 마음으로 읽어낸 그녀가 아름다웠다.

정작 아내의 이 편지를 읽고 당황한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니 더 우스웠다. 그 뒤의 다른 것들을 생각하니 더 이상 생각하기가 싫어졌다. 왠지 모르게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과 뒷이야기들을 상상하자니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 까닭이다.

아내의 이 답시에 곽휘원은 어떤 답장을 다시 했을까, 아니면 그냥 아내의 즐거운 착각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넘어갔을까. 이 부분은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어찌보면 사람은 착각과 상상의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몫도 있다. 점점 더 바빠지고 있는 때, 상대방의 실수를 행복으로 만든다면. 악의적인 실수가 아닌 일상적인 실수들을 말이다. 공연한 상상이다.

오해와 비틀어진 이해가 사람의 마음을 무척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 추웠던 겨울이 서서히 뒤로 물러가고 있다. 지인의 문자 메시지에서 ‘무인도에도 봄은 오는가.’ 하는 말에 ‘외롭구나.’ 하는 생각에 사람에게는 누구나 바다 깊은 곳에서는 서로 손을 잡은 외로운 섬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답장을 보냈다.

쏜 화살과 같은 세월의 빠름을 한탄하기도 했다.

나의 실수도 상대방의 실수도 곽휘원의 아내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읽어내는 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백이 없는 빽빽한 사랑의 편지를 보내야겠다. 아니 마음의 여백을 충분히 둔 여유로운 사랑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