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김진경

첫 아이를 낳은 해가 1994년 4월 19일이다. 대전의 아스팔트 열기는 대단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해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찬물을 많이 마셨다.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자 위경련으로 고통스러워 한의원을 들락날락 했다.

그 아들이 올해 고3. 그 아이가 힘들게 여름을 나고 있다. 내 아이뿐 만이겠는가 말이다. 이곳으로 이사 오고 처음으로 지긋지긋한 더위에 시달렸다. 지나간 여름들은 선풍기 돌린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새벽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하루의 더위를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올 여름은 ‘열대야’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알고 싶지 않은 단어였다.

그런데‘부평동부교회 청년회’에서 마을로 농활을 왔다. 평생을 농사를 지으신 어르신들도 한낮을 피하고, 해가 떨어져 그나마 그늘이 있을 때 일을 하셨다. 그리고 새벽에 일을 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은 줄줄 흘렀다.

더위는 물러갈 줄 몰랐다. 뜨거운 더위에 마을의 어르신들도 그들을 안쓰러워했다. 그래서 청년들은 한 낮을 피하고 마을의 일손을 도왔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마을을 섬겼다.

시골에 사는 나도 화분에 심어 있는 고추가 전부다. 그리고 한 번도 따 본적도 없다. 그런데 그들은 아침 일찍 나가서 고추를 땄다. 다 따서 필요 없는 콩대를 뽑아냈다. 뜨거운 한낮을 피해 작지만 큰 일손을 보탠 것이다. 하루 반 낮의 농사일은 뜨거운 햇살도 그들을 이기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말복이고 입추인 날, 마을잔치 시간에 뜨거운 햇살이 참아주었고 먹구름이 하늘을 장식했다. 고마웠다. 삼계탕으로 마을 잔치를 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마을 분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꼭 필요한 물품을 담아서 선물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회관 앞의 정자에 앉아 간단한 오락을 즐겼다. 청년들이 이길 수 있는 상황인데 일부러 져 이긴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즐거운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교회의 콘테이너 안을 밤 10시까지 벽지를 발랐다. 서투른(?) 그들의 솜씨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지만, 나 역시 벽지를 발라본 적이 없기에 대견스러웠다.

불어를 전공하신 선생님의 지도하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깨끗이 마무리했다. 오히려 청년들은 그들만의 즐거운 입담을 하며 일을 했다. 옆에서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지도하신 전도사님은 “다행인 것은 청년들이 지금까지 한 마디의 불평이 없었다.”라며 청년들에게 고마워했다.

청년들이 지치고 피곤할 텐데 그 밤에 올림픽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
부러웠다. 내 청년의 날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가는 세월을 어쩌랴. 청년들처럼 한밤을 즐기기에는 어려웠다. 은근히 그들의 청춘을 내게 자랑하는 것 같았다.

청년들은 땀방울을 아낌없이 마을에 흘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을 나누어주었다. 비록 지금은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세월이 흘러 이 시간을 회상한다면 큰 기쁨으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또한 그들의 뒤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라고 격려해 준 많은 이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사무엘 얼먼의 시 ‘젊음’ 중 일부를 그들에게 보낸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요, 마음의 상태이다…… 의지와 풍부한 상상력과 활기찬 감정에 달려 있다……이상을 버릴 때 우리는 늙는다…… 그것이 사람들로부터 하늘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과 활기,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한, 그대는 영원히 젊으리라.』

-아동문학가 김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