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n논단]다산 정약용을 생각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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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n논단]다산 정약용을 생각 하며
- 가갑손 성균관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초빙교수
  • 입력 : 2018. 07.18(수) 09:01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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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갑손 성균관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초빙교수
[ctn논단]조선후기 실학자요. 개혁가요. 민족의 큰 스승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고 1783 (22세)초시에1789년 문과에 급제. 예문관.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록. 성균관직강. 동부승지. 병조참의. 형조참의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 수원 화성 축조에 축성법과 기중기 이용법 등으로 수축에 기여했다.

1800년 정조의 급서 후 신유박해 시 1801 (40세)경상도 장기. 전라도 강진으로 18년간 장기 유배 되었다.

18년 유배? 우리역사상 감옥 아닌 최장의 금고형이다.

그의 유배도 당시 당쟁의 거센 파고와 소론의 음해도 한몫을 했다.

당쟁은 파직. 사약. 귀양. 능지처참. 부관참시. 쇄골표풍 등 세계사에도 없는 처참한 보복을 감행 했다.

18년 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이 그리워지고 존경스런 것은 나만은 아닐 성 싶다.

그중 예전상구정. 독역요지. 논어고금주. 맹자요의. 1818년(57세)불후의 목민심서 48권을 완성하고 75세로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재 자택에서 서거했다.

다산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다산연구소도 있다.

당시 다산이 18년을 국가에 헌신 할 기회가 있었다면 조선 말기의 국운이 바뀌어 졌을지도 모른다.

조선 초기 사육신. 중종시 개혁에 앞장섰던 젊은 정암 조광조.

이런 걸출한 인재가 당쟁의 제물로 살아진 참담한 역사가 지금도 반복 되어 인재를 말살 하고 있다.

200년전 목민심서가 목민관 (공직자)의 수기치인 (목민)의 교과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잊는 민족은 번성 할 수 없다.
(본인은 다산전문가가 아니기에 오류에 이해를 구합니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로 의리를 지키며 살고싶다.
술은 웃음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도록 마셔라!
내가 그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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