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페치카 최재형 선생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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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페치카 최재형 선생의 부활
김영희 CTN 객원 기자
  • 입력 : 2023. 03.06(월) 12:06
  • 김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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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50주년기획 아침마당 최재형 선생과 아침마당에 출연한 최재형 선생 후손 최일리야, 이콘스탄틴/김영희 객원기자(TV화면 캡처)
[칼럼/CTN] 이번 3.1절은 최재형 선생 순국 103주년이 되는 해이다. KBS 개국 50주년 기획 '아침마당'에 최재형 선생의 후손 두 명이 나와 할아버지 최재형에 대해 알렸다.

최재형의 맏아들 계열 5대손자인 최일리야와 최재형의 막내아들의 후손인 이콘스탄틴이 출연했다.

며칠 전 사단법인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로 임명된 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아침마당을 시청했다.

마침 아들 내외와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아들 내외에게 현충원에 가자고 말했다. 아들 내외도 아침 방송을 보며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생각했노라고 말했다.

바로 그 안중근 의사를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최재형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기에 3.1절 특집 아침마당은 더 특별했다.

최재형 선생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구 소련 치하에서 러시아 국적이었던 이유와 스탈린에 의해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구소련이 해체되고 한러수교가 이루워진 후에야 러시아와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과 이념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당시 소련 국적의 최재형 선생을 언급할 수 없는 정치적 현실도 큰 이유가 되었다.

당시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소련)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드러낼 수 없는 남북한의 이념 때문에 러시아 항일 독립운동사가 묻혀 있었다.

한러수교 이후에 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해져 이제라도 최재형 선생이 제대로 조명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스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에 있는 안중근 기념비 및 행경 5기졸업여행 블라디보스톡(2018) 그리고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과 필자/김영희 객원기자

내가 최재형 선생을 처음 안 때는 2018년이다. 마침 행복한 경영대학 5기 졸업여행을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

우수리스크에서 처음 들은 최재형 선생은 대단한 애국지사였다.

그는 9세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6년간의 항해를 통해 견문을 넓힌 최재형은 그 후 완벽한 러시아어를 통해 러시아인들과 인맥을 형성했다.

러시아 군대를 상대로 여러개의 군납회사를 차려 막대한 부를 축적해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모든 재산을 바치는 등 사회지도층으로서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독립운동가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의 배후인물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렇게 훌륭한 분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럽고도 놀라웠다. 여행 후 최재형 선생 관련 서적과 기록물, 시베리아의 벽난로라는 뜻의 '페치카' 뮤지컬 등을 보았다.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에서 한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쓴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도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선생은 한인 동포들에게 '페치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분의 업적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찡해졌다.

그러던 중 인간개발연구원 조찬회에서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을 우연히 만났다. 그

후 최재형기념사업회에 조그만 마음이나마 전하고자 다달이 내는 후원회비 약정서에 싸인했다. 그 후 문 이사장과는 여러 활동으로 만나게 되었으며 뜻밖에도 며칠 전 최재형기념사업회 정기총회에서 이사로 추대받아 황송했다.

나는 인삿말로 '부족하지만 최재형 선생님을 흠모하는 마음과 문이사장님 이하 헌신하는 분들께 배우며 협력하겠노라'고 이사 수임 인사말을 갈음했다.

문 이사장은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어떤 인연이기에 연거푸 이사장직을 연임한 분일까? "2012년에 고려인들의 강제이주를 소재로 한 소설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쓰고 우수리스크로 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되었죠. 최재형 선생의 업적에 감명을 받아 2014년에 소설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이후 최재형 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활동하다가 상임이사를 맡았고 2019년에 제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2021년에 4대에 이어 올해 5대째 연임되었다." 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최재형 선생을 알리고 선양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문 이사장은 앞으로도 역사 교과서에 최재형 선생을 등재하는 일, 국내에는 아직 최재형 선생 기념물이 없으니 기념관 건립과 영화 등으로 최재형 선생을 더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다행히 그동안 노비로 잘못알려진 최재형 선생이 전주최씨로 밝혀져 종중들이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 최재형 선생이 전주 최씨로 밝혀지게 된 사연도 문이사장의 역할이 컸다.

충남 태안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소주 가씨의 문중 책을 발간한 가재산 회장과의 인연으로 비롯되었다.

소주 가씨의 학술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가재산 회장이 가져온 전주최씨 한글 족보책을 보게 된 문영숙 이사장은 전주 최씨라는 문구에 깜짝 놀랐다.

그렇잖아도 최재형 선생의 3남이 남긴 필적에서 전주최씨라는 사실을 발견한 후 전주 최씨 무슨 파인지를 몰라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문영숙 이사장은 그 책을 보자마자 출판사에 연락해서 결국 전주최씨 한글 족보를 발간한 문중과 연결을 할 수 있었다.

그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소주가씨 가재산 회장으로 가재산 회장은 최재형 기념사업회가 장학회로 출발할 때부터 현재까지 후원을 하고 있던 분이었다.

문영숙 이사장은 5대 이사장을 맡으면서 삼성맨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가재산 회장을 최재형기념사업회 고문으로 위촉했다. 문 이사장이 추적한 결과 최재형 선생이 전주 최씨 평도공파로 밝혀졌다.

이 소식에 최씨 문중에서 가문의 영광이라며 기념관 건립에 뜻을 같이 하겠다고 나섰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어떤 곳인가? 2010년에 기업인으로 구성된 공동대표 네 분이 우연히 블라디보스톡의 우수리스크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최재형 선생의 업적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에 감동해 2011년 최재형 장학회를 발족했다. 장학회에서는 후원을 받아 형편이 어려운 고려인 대학생 1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초대 이사장은 김창송이다.

그는 사업가로 수입협회 회장을 지냈다.

그의 회고를 들어보면 러시아 연해주는 만주와 더불어 항일독립운동의 주요 근거지였더군요. 몇 군데 항일유적지를 탐방하다가 조그맣게 쇠락해가는 주택 앞에 서서 가이드로부터 "이 집이 최재형 선생께서 일제에 붙잡혀 총살당하실 때 마지막으로 사시던 집입니다. 최재형 선생께서는 기업인으로서 거대한 부를 축적하였으나 한인동포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신문을 창간하고 의병운동 및 항일독립운동에 자신의 모든 재산과 생명마저 바치신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십니다." 라며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설명하는데 비즈니스맨였던 김창송 이사장은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져 고개가 숙여졌다고 한다.

2015년에 사단법인을 만들었고 2018년에 국가보훈처로 이관했다. 현재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장학사업, 최재형 선양사업 및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여러 곳의 후원을 받아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 고려인민족학교를 돕고 있고, 고려인 후손들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재형기념사업회는 십시일반으로 모아지는 손길로 현재는 열악하게 운영되고 있지만 할 일은 태산처럼 산척해 있다. 우리가 지금 이땅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은 독립운동가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다. 그 희생을 항상 기억하고 후대에 전해서 그 분들이 지켰던 대한민국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이 우리 후대들이 해야 할 일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토록 헌신적 삶을 산 최재형 선생을 우리가 이제야 기리게 되어 송구스럽지만 이제라도 뜻있는 분들의 출발로 인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마침 3.1절 휴일이니 시간을 내어 현충원에 가 최재형 선생의 허묘 자리라도 찾아보고 참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독립유공자 묘역과 임시정부 묘역에 가 일일이 최재형의 허묘가 있던 빈터라도 있나 둘러보았으나 허사였다.

'시베리아 동포의 대은인'으로 불렸던 최재형 선생은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묘가 조성됐다가 이른바 '가짜 유족 사건'으로 현재 묘가 멸실된 상태이다.

문 이사장과 유족들은 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로 존재하는 최재형 선생을 원래 묘가 있던 자리에 복원해야 한다고 대국민 서명운동과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복원운동에 매진했다. 그 결과 국가보훈처에서도 국립묘지 매장법을 개정하기에 이르렀고 올해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묘 복원과 더불어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묻혀 있는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골을 모셔와 최재형 선생과 합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페치카 최재형 선생이 부활하고 있다. 숨겨졌던 공로가 밝혀져 세상의 빛이 되며 우리 후손들에게 러시아 항일독립운동가의 대부로 우뚝 설 수 있게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가슴 깊이 새기며 묘가 복원되는 날 다시 아들 내외와 찾아 참배를 하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최재형을 제대로 모시는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위대한 업적을 알게 될 것이다.

나도 부족하나마 최재형기념사업회의 이사로 그 분을 더 알리고 선양하는 일이 곧 대한민국의 힘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선은 오늘 나와 동행한 아들 내외에게 최재형 선생을 제대로 알릴 수 있어 기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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