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의 칡과 등나무가 주는 울림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천리포 수목원의 칡과 등나무가 주는 울림
-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 입력 : 2021. 03.15(월) 13:11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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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CTN] 몇 해 전 내가 활동하는 한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충남 태안에 위치한 천리포 수목원에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겸한 여행을 갔다.

본래 태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면서도 남산에 올라가보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처음 갔다.

이 수목원은 주한 미군 출신이었던 민병갈(閔丙渴, 1921~2002, 영어이름: Carl Ferris Miller) 박사가 한국에 귀화하여 1962년부터 평생을 바쳐 20만 평의 땅에 아름다운 수목원을 만들어 가꾸어 놓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수목원은 그동안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2002년 민 원장이 81세로 별세한 후 천리포 수목원은 재단법인이 되었고, 정부가 공익목적의 수목원으로 지정하여 공개했다.

국제 수목학회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에서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 받았다.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은 물론 전 세계 60여 개 국에서 들어온 도입종까지 1만 6천여 식물종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다 수목원이다.

특히 4계절 어느 때나 꽃을 볼 수 있고 인근 천리포해변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에다 자생 및 세계 각국의 희귀·멸종식물의 육성,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힐링형 수목원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미리 예약한 숲 해설가의 인솔 하에 수목원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우리나라 전 지역은 물론 세계 도처에서 들여온 희귀한 나무와 식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마다 학술적 분류나 자세한 설명이 붙은 팻말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진 스토리, 나무나 꽃 이름이 지어진 사연들까지 곁들여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팻말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민병갈 원장의 수목에 대한 사랑과 숨소리가 아직도 배여 있는 듯했다.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은 숲해설가는 타 지역에서 여 교사로 정년퇴직 후 고향에 봉사하기 위해 낙향한 이 지역 출신의 자원봉사자였다.

귀티가 나는 인상에 얼굴에서도 자상함이 묻어나왔다.

어느덧 베테랑이 되어 재치 있는 말솜씨와 유머 섞인 설명이 계속되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칡과 등나무로 엉켜있는 큰 해송 앞에 모이도록 한 후 안내자의 진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갈등의 어원이 무언지 아시지요?"

갑자기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에 다들 시선이 모아졌다.

"바로 저 나무들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저 큰 소나무를 보세요! 좌측에서는 칡넝쿨이 치렁치렁 옆의 나무를 감고 있고, 우측에서는 등나무가 옆 나무를 팔목을 조이듯이 감고 있는 거 보이세요?'

처음에는 말의 의미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칡과 등나무가 가운데 해송 한 그루를 두고 용호상박의 한판 대결을 벌이듯이 서로 엉켜져 있었다.

반면 중간에 서있는 나무는 밑에서부터 나무 꼭대기까지 완전히 에워 쌓여 있었다.

살펴보니 본래의 모습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제대로 크지 못한 채 나뭇가지들이 거의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칡과 등나무는 아랑곳없이 싸움을 계속하며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갈등(葛藤)이란 글자 그대로 칡 갈(葛)에, 등나무 등(藤)를 써서 '갈등' 이었다.

갈등이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현장이었다.

덩굴식물은 다른 물체를 감아 올라간다. 줄기자체로 감는 식물과 오이나 포도처럼 덩굴손을 이용하는 식물도 있다.

덩굴식물은 감는 방향이 저마다 다르다.

시계 도는 방향으로 감는 것을 오른쪽감기, 그 반대현상을 왼쪽감기라 한다.

등나무, 인동덩굴, 박주가리 등은 왼쪽감기를 하고 칡이나 나팔꽃 등은 오른쪽감기를 한다.

반면에 더덕이나 환삼덩굴 등과 같은 일부 식물은 타고 올라갈 수만 있으면 오른쪽 왼쪽 관계없이 감아 올라가기를 하는 식물도 있다.

오른쪽 감기를 하는 칡은 자신이 감고 도는 나무를 햇빛 부족으로 죽게 하고, 등나무는 자신이 기어올라간 나무를 목 졸라 죽인다고 한다.

좌등우갈(左藤右葛)이란 말처럼 이들이 감고 올라가는 방향이 서로 달라 한 곳에서 만나면 싸우게 된다.

이게 바로 갈등이란 말의 어원이다.

만일 이들 덩굴줄기를 풀어서 반대로 감아 놓아도 새로 자라나는 덩굴줄기의 끝은 원래의 제 방향을 찾아간다.

고집스럽다.

서로 정반대 감기를 하는 칡과 등나무가 만나면 싸울 수밖에 없다.

어느 곳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한국 사회에서 갈등은 노사갈등을 비롯해 지역갈등, 이념갈등이 있다.

양극화에서 나타나는 각종 갈등들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회사 내 조직에서는 세대 간 갈등이 있다. 가까운 가족, 친구, 고부간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더구나 최근에는 광화문이나 서초동 거리에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점점 크게 내고 있는 대립은 사회를 불안하게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가 다원화되고 있는 가운데 결혼이민자를 포함한 외국인이 이미 2백 만 명이 넘게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

문화 충돌이 빈번해지고 있다.

다문화 가족에 대한 문제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갈등요소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개발한 사회갈등지수로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OECD 평균을 상회한다.

OECD 회원국 중에서 다섯 번째로 높고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만도 246조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갈등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 몽골제국의 징기스칸이나, 겨우 7백만의 인구에 지면의 4분의 1이 바다보다 낮은 열악한 네덜란드의 예에서 알 수 있다.

세계를 호령하며 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다양성의 수용과 관용'이었다.

역사학자들의 지적이다.

칭기즈칸은 양아버지의 배신으로 죽을 고비를 맞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따른 부하 19명이 있었다.

19명의 부하 중 칭기즈칸의 친동생만이 같은 몽골씨족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인종도 종교도 달랐다.

칭기즈칸 군대는 자신들의 전통방식만 고집하지 않았다.

다른 민족의 기술과 전통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어떤 전쟁에서는 중국식 무기로 승리를 거두고, 어떤 전쟁에서는 아랍인 기술자들이 활약하였다.

사회갈등이 제대로 관리만 된다면 다양성을 흡수하여 역동적인 발전의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인들은 극단을 수용하는 유전인자가 있다.

극단의 '넘나듦'에 의해서 극단적인 요소들을 밀어내지 않고 융복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질이다.

말하자면 한국인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들을 끌어안아서 손쉽게 넘나들기도 한다.

집안에는 대청, 동네에는 마당, 도시에는 광장 같은 중간지대를 설정해서 완화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2002년 월드컵이나 태안의 기름 유출 사고, 그리고 코로나19사태에 대처하는 K방역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라는 공감의 마음만 생기면 하나로 똘똘 뭉치는 한 마음의 나라다.

그렇다면 갈등을 줄이고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무엇일까.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여는 데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대문, 창문, 자동차문 등 사람이 드나드는 문들이 있다.

이러한 문들은 남이 밖에서 열 수 있도록 손잡이나 문고리가 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은 손잡이나 고리가 없어 자신만이 열 수 있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 필요하다.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올해도 지역·계층 사이의 갈등을 풀어내는 마음의 치유와 힐링 프로그램이 운영된다고 한다.

이곳을 한 해 2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는데, 칡과 등나무의 싸움현장을 보면서 갈등이 이해되고 그 해결책을 얻는 희망의 소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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