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백차 아버지의 호통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경찰백차 아버지의 호통
- 핸드폰책쓰기코칭협회 회장 가재산
  • 입력 : 2021. 06.22(화) 16:24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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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산 핸드폰책쓰기코칭협회 회장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CTN] 내 고향은 10여 년 전 기름유출 사고가 났던 태안의 시골마을이다.

나의 부친은 우리 마을에서 엄하기로 유명하여 동네에서는 '경찰백차 1호'로 통했다.

그 당시만 해도 겨울 같은 농한기에는 마을사람들이 딱히 할 일들이 없다 보니 사랑방에 모여앉아 화투놀이가 성행했다.

화투놀이는 도박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보내기위한 심심풀이 놀음였다.

부친은 성격이 강직하셔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생각으로 그것을 아예 근절시키기 위해 동네 순찰을 자청했다.

으슥한 밤중에 불심검문에 걸렸다간 혼쭐나게 혼을 내기도 했다.

요즘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부친은 젊은 사람들이 풍기가 문란해진다 하여 연애질을 하지 못하도록 단속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촌 누이가 바로 이웃집에 살던 청년과 눈이 맞아 우리 동네에서 '최초 연애 결혼'이라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예상대로 부친은 몹쓸 일이 동네에 벌어진데다 집안 망신이라며 노발대발하셨다.

결국 결혼식에 가족 친지들이 한 사람도 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바람에 작은댁에서는 결혼식을 올리느라 크게 애먹은 일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길을 지나가다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안하면 그 자리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동네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다툼이 일어나면 부친이 경찰의 역할을 도맡아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잘못한 측에 대해서는 반드시 바로잡도록 훈계하였다.

이러한 역할은 우리 집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른 새벽이면 벌써 논빼미 물꼬까지 보신 뒤 마당에서부터 큰 소리로 헛기침하며 집안에 들어오셨다.

날이 밝았는데 무슨 늦잠이냐며 모두 기상하라는 기상나팔 소리였다.

무려 8남매를 둔 우리 집에는 조카들까지 애들만 열 명이나 같이 살다보니 조용할 날이 없이 소란스러웠다.

만약 싸우거나 일정 기준이 벗어날 경우 부친의 가차 없는 집단기합이 떨어지곤 했다.

이러한 학습효과 덕에 지금도 우리 형제들은 한 번도 형제 간에 말다툼하거나 형님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예의에 벗어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부친의 DNA를 물려받았는지 나는 집안에서 이러한 원칙과 기준을 정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다.

두 자녀가 다 결혼하여 손자들이 네 명이나 있지만 지금까지 아이들은 집안의 일에 원칙을 지키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것을 제일 중요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커다란 액자 하나가 결려 있다.

'최선(最善)을 다하는 마음' 이라고 쓴 우리 집 가훈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거나 특별히 어떤 것을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꼭 한 가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 집 가훈대로 '최선을 다 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도 부하를 평가할 때도 판단 기준은 '최선을 다 했는가'라는 물음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실수했거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꾸짖거나 질책하기보다는 용기를 북돋우며 주려고 노력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지적하고 따끔하게 충고해 주었다.

따뜻함과 엄격함의 조화다.

우리사회를 보면 사뭇 다른 모습들이 너무 많다.

부성애의 대표격인 가시고기 못지않은 동물이 있다.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다. 황제펭귄은 남극의 한 겨울에 알을 하나 낳는다.

알을 낳은 엄마 펭귄은 자식들에게 먹일 양식을 준비하러 먼 바다로 떠나기에 앞서, 아빠 펭귄에게 그 알을 맡긴다.

남극은 영하 40도 이하의 극한에 100km의 강풍이 몰아치기 때문에, 실수로 알을 떨어뜨려 2, 3초 만이라도 추위에 노출되면 알은 터져 죽고 만다.

알을 넘겨받은 아빠 펭귄은 그 알을 발 위에 올려놓고 2개월 이상 남극의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아빠 펭귄은 눕지도 엎드리지도 못한 채, 마치 동상처럼 꼿꼿이 서서 알을 품으며 60여 일을 견딘다.

그때 먹지 못하고 알 품기에만 매달린 아빠 펭귄은 지방이 다 빠져서 원래 체중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태어난 이후에도 자식들이 배가 고프다고 보채면 아빠 펭귄들은 위속에 가지고 있던 마지막 비상식량까지 토해서 자식들에게 먹인다.

대한민국 부모들도 황제펭귄 못지않다. 결혼해 자식이 생기면 애들 위주로 인생이 재편된다.

살인적인 사교육비, 그것도 성이 안 차면 아예 해외로 보낸다.

기러기 아빠들은 생이별이 시작된다. 어렵게 교육이 끝나도 끝이 아니다.

다시 직장을 알아 봐야하고 어렵사리 결혼하게 되면 빚을 내서라도 혼수는 물론 살집까지 장만해 줘야 한다.

거기서 끝날거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것이 기다린다. 손자를 봐주어야 하고 빈 냉장고를 가끔 채워주다 못해 심지어는 카드까지도 내준다.

'부모는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댈 필요가 없도록 해주는 존재다'는 말이 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늘 헌신적이지만 때로는 이기적이어야 하고 경찰의 역할도 서슴치 않아야 한다.

상공에서 맴도는 헬리콥터처럼 부모가 감싸고 무조건적인 사랑만 하면 애들은 남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의존형 사람이 된다.

소위 애물덩이로 부모의 마음마저 후벼파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부모는 어디까지나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잡는 법을 알려주는 역할, 곁에서 최소한으로 도와주고 조언해 주는 컨설턴트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에서 한때 대발이 아버지가 나오는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였다.

이 드라마의 인기몰이로 한류라는 말이 중국에서 처음 쓰기 시작했다.

중국남자들이 밥하고 빨래까지 책임지는 지나친 여권사회에서 아버지들의 무언의 항의이자 절규였는지 모른다.

우리사회가 다양화되고 여성의 위치가 점점 향상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지만 직장, 특히 집안에서 꼭 존재해야 할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잘못을 해도 바로 꼬집어 이야기해 주기보다 무관심이요, 정해진 질서나 원칙을 벗어나도 나무라거나 호통치는 일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선진국이란 국민소득으로 평가되기 보다 원칙이 지켜지고 예측 가능한 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선진사회가 되려면 질책과 잘못에 대한 이 나라 어른들의 호통이 부활해야만 하지 않을까. 지금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질서가 무너지고 편가르기가 심해지면서 혼란이 올 때마다 대쪽 같으셨던 아버지의 모습과 호통이 그리워진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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