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난 한 송이 꽃

김영희 교육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난 한 송이 꽃
김영희 끝끝내엄마육아연구소 대표
  • 입력 : 2022. 12.02(금) 17:42
  • 김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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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CTN객원기자
[김영희 교육에세이/CTN] 몇 해 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목의 조각상이 있었다. 조각상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날 조각가카포치아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채석장에서 대리석을 채취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불행히도 오른손을 잃었다.
사람들은 그 조각가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왼손으로 조각하는 법을 배웠다. 마침내 오른손으로 조각했을 때보다 훨씬 더 뛰어난 조각상을 완성했다. 조각가가 오른손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 조각상의 이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된 것이다.
이 조각상의 본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낙심치 않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의 정신을 기리는 뜻에서였다. 그 조각가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조각가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다. 꼭 될 거라고 믿었던 일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어려움에 굴복해서 좌절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우리가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이나 불리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조금만 다르게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반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청각 장애를 딛고 피나는 노력 끝에 화가가 된 운보 김기창 화백, 미국의 맹농아 저술가이자 사회사업가 헬렌켈러, 교향곡 9번 ‘합창’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긴 귀머거리 베에토벤 등은 인간 승리의 주인공들이다.
지인 중 역사 동화와 에세이를 20여 권 낸 작가가 있다. 그녀는 한국 전쟁 직후 1953년에 태어나서 어려웠던 한국의 역사와 함께 동시대를 견뎠다. 그녀의 환경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고등공민학교를 끝으로 배움도 접어야 했다. 글을 모르는 이웃 어른들의 편지를 읽어주고 대신 답장을 써주는 것이 그녀의 글쓰기 공부였다.
그녀는 결혼 후 치매 시부모 병 수발과 황제 같은 남편 시하에서 억눌리며 살았다. 쉰 살이 넘어서야 동화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항상 배움에 대한 갈증,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분출되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내친김에 고입·대입 검정고시와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지난한 과정들은 그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인생을 역전시킨 늦깎이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척박한 삶을 옥토로 만든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의 작가 문영숙 이야기다.
그녀의 인생에서 전반전이 가난과 잃어버린 자아를 안고 버거운 현실에서 몸부림치는 시간이었다면 후반전은 문학을 통해 자아를 찾고 꿈을 이루는 활화산인 셈이다. 현재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안중근 홍보대사를 맡고 있으며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로 인문학 강연, 블라디보스톡 직항 한·러·일 롯데 크루즈 선상 강연과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대 역전 드라마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에 비해 우리는 흔히 아주 듣기 좋은 핑계거리와 빈정거림으로 일관하지 않는가.
“애 때문에 못 살겠어.”, “공부를 그 따위로 하니 나중에 뭘 해 먹고 살겠어.”, “이제 나도 지쳤어.” “코로나로 마음도 몸도 엉망이 되고 있어.”, “나도 남들처럼 받쳐주기만 했다면 뭐가 되도 됐을 거야.”
이렇게 바꿔보자.
“애가 있어 얼마나 행복한가.”, “다 자기 복대로 살겠지.”, “나는 항상 열정적이고 호기심이 많아.”, 코로나가 나에게 오히려 기회가 되고 있어.”, “사대육신 멀쩡한 것만도 감사할 뿐이지.”
이 얼마나 흐뭇한 말인가. 처지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는 크게 벌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컵에 남은 물을 보고 ‘조금밖에 남지 않았네’, 다른 사람은 ‘물이 아직 그만큼이나 남았네’ 어떤가. 긍정과 부정 사이의 간 극은 작으나 그 결과는 힘센 황소만큼이나 세다. 해결 불가능한 일 앞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망설이는가.
“과연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나에겐 너무 과분해.”
불굴의 의지가 있다면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나 그 반대라면 태산보다도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특히 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아이가 항상 뒷심까지 발휘해 인생을 잘 마무리 하길 바라며 키운다. 그러기 위해 어려서부터 강한 멘탈과 실천력을 길러주려고 노력한다. 어떤 어려움에 부딪혀도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는 뚝심으로 이어진다. 마라토너가 알맞은 체력 분배로 42.195m를 완주하듯 우리 인생도 크고 작은 산을 넘어 드디어 고지에 이른다.
고비마다 참고 견디며 산다는 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후렴구의 반복이기도 하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한다.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고 자책하며 혼돈에 빠진다. 수없는 담금질로 육신을 가다듬어 온전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굴곡진 밭에서 예쁘고 찬란한 인생 꽃을 활짝 피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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