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과의 인연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삼성그룹과의 인연
-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 입력 : 2021. 02.23(화) 10:18
  • 가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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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CTN]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그 당시는 한국의 경제발전 가속화로 수출 주도 성장을 하던 때라 경기 또한 호시절이었다.

그때는 취업 환경이 좋아 상대졸업에다 장교출신들은 어느 기업에서든 대환영이었다.

원서만 내면 어디에나 합격할 정도였다.

요즘 힘들게 대학을 졸업해도 청년실업자가 양산되는 시대와 비교하면 축복을 받은 세대들이었다.

삼성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은 서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웬만한 회사들은 간단한 서류전형과 면접시험 만으로 입사가 가능했다.

나도 상과대학에다 장교 출신인지라 서너 곳에 지원하고 최종 면접만을 보았다.

현대나 대우그룹과는 달리 삼성의 입사 면접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다른 그룹사에서는 면접시험을 볼 때 한꺼번에 몇 백 명씩 면접자를 모아놓고 4~5명씩 면접을 조별로 치르다 보니 대기 시간이 한없이 길었다.

그런데 삼성은 1시간 단위로 잘라서 일정 인원을 조별로 진행하니 대기 시간이 길어야 20~ 30분 정도였다.

면접이 끝나면 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그 안에는 식사 대와 교통비가 들어있었다.

삼성의 세심한 배려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 삼성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마음에 다른 그룹사를 제치고 삼성에 입사하게 되었다.

당시 면접 장소는 시청 앞에 있는 삼성 본관이었다.

지금은 그곳이 다른 회사에 매각된 상태다.

면접이란 누구나에게 긴장되는 순간이다.

면접장에는 사장단으로 보이는 분들 다섯 명이 앞줄에 나란히 앉아 있었고, 뒤편에 금테 돋보기를 쓴 분이 홀로 앉아계셨다.

소문으로는 당대에 관상쟁이로 제일 유명한 백운학 선생이 면접을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그와는 달리 말로만 듣던 이병철 회장이었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면접 시험장에 입장을 하자 모두가 긴장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순서대로 자기 소개를 했다.

마지막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에서 성 씨가 가장 빠른 '가 재산'입니다."

순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아니 세상에 성씨 중에 가씨도 있단 말이야?' 의아해하며 다들 눈이 휘둥그래지며 나한테 질문이 집중되었다.

"정말 가씨 성이네요! 저는 난생처음 들었는데 반갑습니다. 그럼 가씨 성을 가진 분들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지요?"

대개는 첫 질문에 바짝 긴장하게 되는 데 나는 그런 류의 질문에는 자신이 있었다.

"네 1만 명 정도 되는데 서울에는 200여 명밖에 없습니다. 저의 조상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5만 대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 장군과 함께 참전했던 유격대장 가유약(賈維鑰)장군이 1대조 할아버지이시고, 제가 18손입니다."

가(賈)씨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이 계속되었지만 나한테는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전역 막판까지 임지에서 복무해야 했기에 취업 공부는 아예 해보지 못한 채 군대 생활을 마쳤다.

그래서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일반상식도 모자란 판에 이렇게 막히지 않고 술술 얘기할 수 있는 것만 집중적으로 물어보니 면접이 너무 싱겁게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기다리던 합격 통지가 왔다.

그것도 당시에는 누구나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무역회사인 ‘삼성물산’이라는 회사명까지 찍힌 합격 통지였다.

결국 면접시험을 가(賈)씨 성 때문에 통과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관상을 보고 '갑을병'으로 점수를 매겼다는 후문이다.

사장단 면접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이 회장이 '병'으로 체크하면 무조건 불합격이었다니 관상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창업 시부터 '인재제일'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던 이 회장은 1957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채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작고하실 때까지 직접 면접에 참가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8월 초 신입사원 입문 교육이 시작되었다.

공채 19-3기에는 육해공 장교로 제대한 205명이 같은 동기로 한 달간 합숙 연수를 했다.

당시에 삼성 그룹의 연수원이 없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 연수원에서 진행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전체 반장에 뽑혔다.

나는 키도 작고 몸도 크지 않은 편이고 말주변도 별로 없는지라 왜 뽑혔는지 참으로 의아했다.

20년이 지났을까 그 당시 나를 반장으로 시켰던 선배를 모임에서 만나게 되어서 그 자초지종을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왜 반장을 저로 뽑으신 거지요"

"아니,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누굴 반장시킬지 몰라 그룹 입사 시험 때 1등한 사람을 선택한 걸세. 그때 그룹 면접시험에서 일등을 한 비결이 뭐야?"라고 거꾸로 되물었다. 실제로 그 대답은 간단했다.

"저는 가씨 성을 가진 것밖에 없었는데요"

교육을 마친 후 입사하니 사원 번호와 의료보험카드가 나왔다.

사원 번호는 한글 순으로 당연히 1번이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의료보험 카드가 '010100000001'로 대한민국 1번이었다.

앞에 1번은 삼성그룹이었고, 그 뒤에 1번은 삼성물산이었다.

마지막 1번은 삼선물산 5천여 명 직원 중 유일하게 가씨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얻은 번호였다.

가(賈)씨는 희귀성에 속하니 유리할 때가 많았다.

지금도 어딜 가나 1번이고 가끔 이름을 기재하게 되면 예명이 아니냐고 본명을 써달라는 경우가 있다.

오죽하면 '그 남자가 가씨성을 가진 그 사람이냐'를 경상도말 다섯 글자로 '가가가가'라는 우스갯소리가 인터넷에 돌아다녔을까.

나는 삼성에 20여 년 근무하는 동안 인사, 교육부서장으로 근무하게 되어 실제로 면접을 진행하거나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삼성을 떠난 이후에도 인사, 교육 관련 컨설팅 및 교육사업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면접위원을 많이 해보았다.

그때마다 삼성에서의 면접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인연으로 공공기관은 물론 대기업의 면접관으로 20여 년간 활동하면서 면접 시 관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 면접을 경험하다 보니 그 사람 얼굴만 봐도 어느 정도 판단이 섰다.

그렇다고 내가 관상을 연구하거나 공부한 적이 없는데 인상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유형이 대강 파악됐다.

게다가 앉아 있는 모습이나 눈높이, 말하는 톤만 들어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성격까지 읽을 수 있었다.

대변혁의 흐름 속에 요즘 직장에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직원채용이 늘고 있다.

게다가 직원 채용 시에 직무능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이나 태도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안면인식 기술 발달로 얼굴에 나타난 특징뿐만 아니라 눈동자의 반응이나 근육의 움직임으로 인성평가를 하는데 관상 요소가 상당 부분 적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코로나로 언택트 채용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서류전형 단계부터 적용되는 AI채용과 면접단계의 화상 인터뷰다.
이처럼 혁신의 시대에 면접의 형태도 대변신 중이다.

나는 지금도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인상부터 보는 습관이 있다.

어쨌든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 그대로가 그려져 있다.

따라서 어떻게 생각하며 삶을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얼굴 표정에 거울처럼 나타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지라'고 말했다.

그렇듯 40세 이후의 얼굴 표정은 곧 그 사람 인생의 결과물이다.

각자의 얼굴 모습은 그가 살아온 대로 나이테처럼 그려질 것이니 말이다.
가금현 기자 ggh7000@hanmail.net
가금현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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