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島)'

김영희 교육에세이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島)'
김영희 CTN객원기자 및 끝끝내엄마육아연구소 대표
  • 입력 : 2022. 10.05(수) 10:10
  • 김영희 객원기자
오피니언
기고
칼럼
사설
인사
종교
동정
신년사
송년사
신동호 칼럼
발행인 칼럼
CTN논단
만물창고
가재산의 삶의 이야기
리채윤의 실천하라, 정주영처럼
문영숙의 꼭 알아야 할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CTN문학관
김영희 교육에세이
박순신의 사진여행
주대호의 물고기 사육정보
미디어 포차
김영희 CTN객원기자
[김영희 교육에세이/CTN]"작가님, 인터뷰 요청드려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매우 느리고 어눌했다. 나는 긴장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김형환 교수의 1인 기업 교육을 마친 이진행인데요. 제가 50인을 인터뷰해서 책을 쓰려는데요,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며칠 후 그와 만나기로 했다. 우선 미팅 시간이 점심때라 아예 조용한 곳에서 식사 겸 인터뷰 장소로 정했다. 약속 장소에 나간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나, 이 작가는 걷기, 말하기 등 모든 행동거지가 불편한 사십 대 중년이었다. 그런 몸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약속 장소까지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갑자기 그가 내게 인터뷰를 요청했다는 자체가 감격이었다. 만나는 시간 내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가 뿜어내는 말은 차라리 혼신을 다하는 바디랭귀지라고 해야 옳았다. 그와의 대화는 정신 집중을 요했다. 까딱하면 말을 놓쳐 내용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자연 나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의 모습은 안스러움과 동시에 감동으로 이어졌다.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로 측은지심이 발동한다기보다 오히려 그의 노력과 도전에 감동 쓰나미가 몰려왔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듯 웃음까지 머금으며 태연했다. 그런 용감한 뚝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인터뷰하는 동안 그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그와 마주하고 있다는 자체가 숭고하고도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졌다.

혼자서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상급의 장애로 휠체어에만 의지하던 그에게 어느 순간 깨달음이 왔다. 우선 휠체어를 벗어 던지자. 언제까지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인가. 힘들지만 발음 연습도 날마다 하자. 운동도 해 체력을 단련시키자. 우선 홈트를 선택했다. 홈트란 집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수건을 이용해 몸통 운동을 하고, 페트병에 물을 담아 들어올리기 등을 꾸준히 했다. 사람을 만나자, 그는 그렇게 노력함으로써 인간관계 또한 보통 사람 못지않았다.

그런 힘의 원천은 초등학교 때부터 업어 등하교를 시키며 갖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덕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법조인이 꿈이라 방송통신대학에서 법을 전공했으나 여의치 않아 그 꿈을 접었다.

최근에 또 다른 희망의 빛이 서서히 발하기 시작했다. 3권째 책을 집필 중이고 강연의 기회를 얻는가 하면 장애인 영화감독으로 활약하며 모 방송사 모니터링 직원으로도 재선발되었다. 현실은 지독한 가난과 장애물의 그늘이 켜켜이 쌓여갔지만 결코 굴복할 수만은 없었다.

걷기 시작 후 한 시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몸으로 증명하며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는 장애인 명강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가갸거겨고교구규’ 등의 발음을 목이 터져라 연습한다고 했다. 그의 진솔하고 부지런한 노력 뒤에는 박수부대의 힘도 크다. 이 작가의 치열함과 인내, 감사 또한 평범한 사람에게 큰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의 육체는 장애일지언정 결코 마음 장애가 아님을 만천하에 포방한 셈이다. 건강한 신체를 타고났음에도 마음 장애를 겪는 이도 생각보다 많다. 불굴의 의지로 견뎌내는 이 작가를 보며 사지육신 멀쩡한 내 자신도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 작가와의 만남은 마음의 정한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과도 같았다. 어떻게 살지에 대해 만감이 교차하는 기회였다.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세상 사람을 감동시키는 예는 의외로 많다. 그들은 여의치 않은 조건에서도 자기만의 꿈과 목적을 향해 도전한다. 여건과 처지를 불평할 사이에 그들은 더 치열하게 살아낸다. 미국 경제 전문지「포브스(Forbes)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꼽은 것은 미국 방송계의 흑인 여성 오프라 윈프리다.

그녀는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와 아버지 집을 오가며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아홉 살 때 남자 친척들에게 성폭행과 성적 학대를 당해 절망 속에서 힘든 사춘기를 보냈다. 열네 살에 미혼모가 되고 마약 중독에 빠진 그녀를 절망의 나락에서 구한 것은 사랑과 교육의 방향을 제시한 아버지와 새엄마의 역할이 컸다.

그녀의 꿈과 성공은 결단코 저절로 오지 않았다. 독서를 통한 기본 실력 연마와 여러 지식과 교양 쌓기, 사고의 전환, 입지전적인 생각 등에 주력했다. 게다가 자신의 어려웠던 형편을 늘 기억하며 삶의 반면교사로 삼았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치가인 앙드레의 말처럼 그녀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 간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사람 중 하나다.

그녀의 훌륭한 어록 중 강력하게 다가오는 말이 있다. “그대들이 실력을 다 발휘해 보기도 전에 너무 쉽게 지지는 말아 달라”는 당부다. 각자 처한 처지가 바닥권이라 해도 힘차게 외치며 일어서는 오뚝이 인생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작가나 윈프라를 보면 김승희 시인의「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가 생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불굴복의 의지라면 '그래도'는 가슴에서 붙들고 놓지 않는 꿈이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중략)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코로나가 여전히 기세를 부리며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요즘처럼 팍팍한 세상을 살아내는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島)'가 아닐까.
김영희 객원기자 kyhi6832@naver.com
오늘의 인기기사